한국야구의 수준 발전에 따라 매년 해외 진출을 노리는 선수들이 증가하고 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닌 가운데 메이저리그(MLB)에서 통산 124승을 따낸 ‘전설’ 박찬호(42)가 후배들에게 조언을 건넸다. 목표를 세웠으면 그에 맞는 철저한 준비를 하라는 애정 어린 조언이다.
류현진(27, LA 다저스), 추신수(32, 텍사스)의 성공과 함께 한동안 주춤했던 메이저리그(MLB)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특히 류현진이 한국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투수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에 따라 그 뒤를 따르는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류현진의 성공을 본 해외 스카우트들도 좀 더 다른 관점에서 한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올해를 마치고 해외진출에 도전할 선수들로는 대표적으로 김광현(26, SK)과 강정호(27, 넥센)이 있다. 최정(27, SK), 양현종(26, KIA)도 자격을 갖는다. 지난해 윤석민(28, 볼티모어)에 이어 또 다른 한국 최고의 선수들이 큰 무대에 도전하는 것이다. 전성기에 있을 때 자신의 기량을 떨쳐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여론이 높다. 스카우트들의 평가도 호의적이라 충분히 좋은 대우를 받고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다면 ‘MLB 1세대’의 기수라고 할 수 있는 박찬호의 생각은 어떨까. 현역 은퇴 후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박찬호는 24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대만과의 아시안게임 B조 2차전에서 SBS 해설위원 자격으로 마이크를 잡고 후배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은퇴 후 NC, SK 등 몇몇 프로 팀들을 대상으로 프로 선수가 가져야 할 자질 등을 허심탄회하게 전달한 박찬호는 방송 중 오랜 메이저리그 생활에 우러나오는 조언을 내놨다. 기량은 기본이고 그 외의 준비도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찬호는 경기 중 중계를 통해 후배들의 기량이 MLB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며 우선 덕담을 건넸다. 김광현에 대해서는 “높은 팔 각도에서 공을 꽂아 넣는 선수다. 포크볼을 던진다면 굉장히 위력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고 강정호는 “(1회) 홈런 순간에 스윙이 아니라 하체의 근육 움직임을 봤는데 대단하다”라며 동양인 내야수들이 가지기 쉽지 않은 탄탄한 체구에 주목했다. 양현종도 “실투를 던졌지만 그것이 삼진이나 아웃이 됐다는 것은 자신의 구위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라며 구위를 높게 평가했다.
자신이 미국에 진출할 때와는 다른 상황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박찬호는 “지금 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메이저리그를 보면서 성장한 선수들이다. 수준 있는 야구를 어렸을 때부터 익혀왔고 성장했다. 체격적으로도 뒤지지 않는다”라며 자신이 활약하던 때보다는 오히려 여건이 더 나음을 지적했다. 하드웨어적으로는 이제 해볼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그 외의 부분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부도 채워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박찬호는 “해외에 나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치면, 열심히 야구도 해야 하지만 영어도 공부하고 미국에 대한 정보도 쌓아야 한다. 이제는 미국을 경험한 선배들도 많다. 가서 적응을 빨리하는 것이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단언했다.

박찬호의 경험이 생생하게 우러나오는 말이다. 박찬호는 한양대 재학 시절 LA 다저스와 계약을 맺고 미국에 진출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누구 하나 물어볼 사람이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영어부터 문화 적응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했다. 박찬호는 현역 시절을 돌아보며 그 과정이 참 힘들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열심히 훈련하고, 야구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결국 이런 부분에서 적응이 되지 않으면 제 기량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는 게 박찬호의 주장이다. 아직 ‘야구를 잘하기 바쁜’ 우리 선수들에게 이런 여유는 다소 부족하다는 것을 에둘러 지적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 한국프로야구에서 해외로 나가는 선수들은 대부분 준비가 부족하다. 나가서는 통역과 지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다반사다. 롱런을 생각한다면 이 기간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언어와 문화 적응이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는 아닌 만큼 빨리 대비할수록 이득이다. 박찬호와 추신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랜 자기 노력을 통해 이런 문제를 완벽히 해결했기 때문이다. 아직 언어 측면은 도움을 받는 류현진 또한 각기 다른 문화의 집합체인 클럽하우스에 낙천적으로 적응하면서 심리적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같은 기량을 가지고 있다면, 준비된 자가 먼저 빛을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제 류현진과 추신수를 보고 자랄 야구 꿈나무들을 생각해서라도 좋은 선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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