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아, 13년 만에 굵직한 나이테를 새겨넣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9.25 16: 24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영화 ‘화산고’로 엔드 크레딧에 처음 이름을 올린 지 꼬박 13년. 솜털 보송보송하던 그녀 나이도 어느덧 계란 한 판이 됐다. 그동안 여신이나 광고 퀸으로 소개되는 게 더 익숙했던 그녀.
하지만 올 가을 자신의 대표작이 될 로맨틱 코미디 한 편으로 영화배우 인생 2막을 새로 설계하게 될 것 같다. 24년 만에 리메이크 된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신민아 이야기다.
미안하지만 신민아는 그간 영화계에서 만년 기대주였다. 하이틴 잡지 모델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아슬아슬한 연기력과 자신감 부족으로 배우와 탤런트, 광고 모델 그 중간 지점에서 어정쩡한 포지션을 유지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타고난 신체 조건과 우월한 마스크에 비해 연기와 발음, 발성은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을 필요로 했다.

이병헌과 호흡을 맞춘 김지운 연출작 ‘달콤한 인생’(05)으로 모처럼 한 계단 도약하나 싶었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였다. 이후 출연한 ‘새드무비’ ‘야수와 미녀’ ‘무림여대생’ ‘고고70’ ‘키친’ ‘10억’ 등이 하나같이 대중과 평단의 외면을 받아야 했던 거다. 물론 배우의 성장과 발자취를 단순히 흥행 여부로 판가름해선 안 되겠지만, 여태껏 신민아가 연기와 에너지로 관객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 기억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신민아가 이토록 냉혹한 평가를 받아야 했던 건 1차적으로 본인의 실력과 자신감 결여 탓이겠지만, 아이러니하게 대형 기획사 소속이란 점도 작용했다는 생각이다. 전지현을 키운 정훈탁 대표가 이끌던 국내 최대 기획사 싸이더스HQ의 간판 주자였던 신민아는 데뷔 초 또래들에 비해 과분할 정도로 많은 황금 찬스의 주인공이었다.
그녀는 신인 등용문이던 학원 공포물이나 저예산 작품을 통해 서서히 실력을 쌓으며 티케팅 파워를 끌어올리는 방식이 아닌, 단숨에 화제작의 신데렐라로 ‘낙하산’ 기용되곤 했다. ‘화산고’ ‘새드무비’처럼 아예 소속사가 자체 제작한 영화의 여주인공을 꿰차기도 했으며, 같은 회사 소속이던 조인성 장혁의 지원을 받으며 패키지 캐스팅의 후광 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아직 영점도 못 맞춘 군인에게 PRI 훈련 대신 덜컥 사격부터 시킨 셈이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이 같은 싸이더스의 전폭적인 지원과 기회 부여에도 신민아는 중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높이 비상하는데 부족함을 노출했다. 멜로와 액션, 느와르,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와 여러 캐릭터에 도전하며 활동 반경을 넓혔고, 박해일 조승우 류승범 등 흥행이 검증된 배우들 옆에도 서봤지만 행운은 그녀를 번번이 비껴갈 뿐이었다.
 다행히 드라마 시청률은 기본 이상이 나와 그녀를 안도하게 했지만, 그녀의 시선은 늘 영화로 향해 있었다. 일부러 시간과 비용을 들여 찾아온 관객에게 희로애락과 판타지를 맛보게 해주며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사이 준비하던 많은 영화가 중간에 엎어졌고, 투자 집행이 어려운 배우로 분류돼 낙담할 즈음 찾아온 작품이 ‘나의 사랑 나의 신부’였다.
 호평 받은 ‘효자동 이발사’ 이후 10년간 세금을 못 낸 감독과의 조합이었다. ‘건축학개론’ 납득이로 떴지만 전적으로 흥행을 기댈 만큼 스타가 아니었던 조정석과의 만남도 신민아에게는 홀로서기 분투의 자극제가 됐을 것이다.
 이번 영화에서 ‘과연 잘 될까’ 싶은 불안과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모두 내려놓은 신민아의 연기는 그 동안 우리가 알던 그녀의 모습이 아니라 더욱 반갑다. 신민아가 칭찬 받는 이유는 단지 망가지는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결혼 생활을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를 매우 섬세하고 세련되게 잘 표현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13년간 어둡고 긴 터널에서 겪었을 당혹감과 상실감을 이 작품으로 보상받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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