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 야구] ‘80㎞ 흑마구’ 렁카호삼, 한국 타선 홀렸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4.09.25 21: 03

수준의 차이는 분명했지만 K팝을 좋아한다는 한 소년의 공은 이상하게 잘 맞지 않았다. 마치 한국 타자들이 뭔가에 홀린 듯 했다. 홍콩 선발 투수로 나온 렁카호삼(20)이 기대 이상의 호투를 펼치며 한국의 5회 콜드 게임을 저지했다.
렁카호삼은 25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야구’ 한국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 선발로 등판했다. 1994년생의 어린 나이, 아무 것도 알려지지 않았던 경력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선수였지만 대단한 선전을 펼쳤다. 렁카호삼을 바라보는 목동구장은 미묘한 침묵, 그리고 격려의 박수가 교차했다.
이날 렁카호삼은 3이닝 동안 64개의 공을 던지며 5피안타(1피홈런) 4볼넷 6실점(4자책점)을 기록했다. 외관상으로는 형편없는 수치였다. 그러나 내용을 따져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피안타는 사실상 실책인 경우가 몇 개 있었고 잘 맞은 안타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타선이 ‘고전한다’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1회 1점은 사실상 비자책이었다. 선두 민병헌의 타구가 우익수 방면으로 날아갔다. 프로 기량이었다면 잡을 수도 있는 공이었지만 홍콩 우익수 융춘와이가 만세를 부르며 발 빠른 민병헌이 3루까지 갔다. 그러나 손아섭의 1루 땅볼 때 1점을 내줬을 뿐 추가 실점은 막았다.
2회 1실점도 역시 사실상 비자책점에 가까웠다. 황재균의 타구가 2루수, 중견수, 우익수 사이에 애매하게 떴는데 홍콩 야수들이 이를 잡아내지 못하면서 위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공식 기록은 안타였다. 이후 패스트볼로 3루 진루를 허용했고 강민호의 우익수 희생플라이 때 추가 실점했다. 하지만 역시 후속 타자들을 잘 처리하고 2회를 마쳤다.
3회도 실책이 빌미가 됐다. 선두 김현수가 내야 땅볼을 쳤는데 이를 직접 잡는다는 렁카호삼이 공을 놓치며 출루가 됐기 때문이다. 이후 박병호 강정호에게 연속 볼넷을 내준 렁카호삼은 나성범을 2루수 땅볼로 유도했지만 2루수 실책이 겹치며 억울하게(?) 2점을 더 줬다. 사실상 3회 3실점도 비자책에 가까웠다.
구위가 위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직구 최고 구속은 120㎞대 후반이었다. 직구가 타자 앞에서 살짝 꺾이는 감은 있었지만 이는 의도했다기보다는 힘이 떨어진 것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커브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80㎞ 초반대의 느린 공이 예상 외로 위력을 발휘했다. 좀처럼 보지 못한 공, 중학생도 던지지 않을 법한 공이었지만 한국 타자들이 막상 제대로 타이밍을 맞히지 못했다. 김현수 정도가 정타를 받아친 축에 속했다.
상식을 벗어난(?) 투구를 한 렁카호삼은 4회 선두 민병헌에게 중월 솔로홈런을 맞고 강판됐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는 듯 웃으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야구 자체를 즐기는 소년의 해맑은 얼굴이 꾸밈없이 드러났다. 즐거운 표정으로 렁카호삼에게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도 있었다. 한국에게는 찜찜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누군가에는 평생 자랑할 만한 소중한 기억이 아니었을까.
skullboy@osen.co.kr
목동=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