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과 지옥. 한화 내야수 송광민(31)의 2014시즌을 요약하지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송광민은 시즌 초반은 지옥이었다. 유격수 수비에서 치명적인 실책을 범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3루수로 전환한 뒤 스스로를 추스른 그는 후반기 괴력의 타격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시즌 성적은 91경기 타율 3할2푼2리 109안타 9홈런 54타점. 데뷔 첫 3할 타율에 출루율(.368)-장타율(.473)도 개인 최고 성적으로 커리어 하이 시즌이다. 지옥에서 천당으로 온 송광민에게 깨달음의 시간들을 들어봤다.
- 올 시즌 참으로 다사다난한 해였는데 돌아보면 어떤가.

▲ 많이 아쉽지만 얻은 것도 많다. 가장 아쉬움이 남는 것이라면 수비다. 나 스스로 많이 당황하고, 막막했다. 수비가 이 정도로 답이 안 나올 줄 몰랐다. 그래도 3루 제 위치로 옮기면서 부담을 덜었다. 타격에서 얻고 배운 점이 많았다.
- 지난해 유격수로 좋은 수비를 보였는데 올해는 왜 그랬나.
▲ 시즌 전 캠프에서 수비에 신경을 안 쓴 건 아니지만 타격에 너무 비중을 둔 것 같다. 타격이 6, 수비가 4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캠프에서는 수비가 7~8, 타격이 2~3이 되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작년에 유격수로 곧잘 했으니 올해는 더욱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유격수는 3루수보다 생각할 게 많다. 3루수는 강한 타구만 막으면 되고, 움직임도 유격수보다는 적다.
- 후반기 타율 3할7푼으로 맹타를 치고 있다.
▲ 성적을 보면 후반기가 좋지만 전반기부터 왼손의 활용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김종모 수석코치님과 장종훈 타격코치님도 주문하신 부분이다. 전반기에는 다리를 들고 쳤다면 이제는 다리를 찍고 치고 있다. 오른 손등 부상을 당한 후 서산에서 내려가서 왼손으로 치는 연습을 많이 했다. 연습을 하다 보니 느낌이 좋더라. 타구에 회전이 많이 걸리고, 중심에만 맞으면 쭉쭉 살아나가는 게 보였다.
- 김태균과 알버트 푸홀스의 영상을 많이 본 것으로 안다.
▲ 태균이형을 비롯해 잘 치는 타자들의 영상을 많이 봤다. 특히 메이저리거 푸홀스를 좋아해서 타격하는 것부터 연습하는 영상까지 많이 찾아봤다. 공익을 할 때부터 어떻게 하면 푸홀스처럼 멀리 잘 칠 수 있을까 연구했다. 자세히 보니 힘을 바탕으로 왼쪽 어깨를 잡아두고 허리 턴이 잘되더라. 나도 다리를 들지 않고 땅에 찍어놓고 치면서 허리 턴의 중요성을 느꼈다. 요즘 밸런스가 좋아지면서 타구에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멀리 간다. 하지만 또 다른 준비를 해야 한다. 아직 완전히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지금의 타격폼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나.
▲ 공을 끌어놓고 칠 수 있게 됐다. 보통 투수의 손에서 떠난 공이 0.38초에서 0.4초 이내로 온다. 조금이라도 늦게 되면 몸의 다른 힘을 쓰게 된다. 지금의 폼으로는 반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직구를 노리고 가다 변화구에도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타법이 좋은 게 슬럼프가 와도 짧다. 선구안도 좋아지고, 스트라이크와 볼을 나름대로 반으로 잘라서 공략한다.
- 지금 타법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건가.
▲ 일단 영상을 많이 보고 있다. 잠들기 전에 보고, 이동할 때에도 보며 머릿속에 남겨두려 한다. 내년 캠프 때 생각한대로 준비할 것이다. 완벽하게 간결한 자세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여기서 안주하면 안 된다. 매년 3할을 치는 게 아니다. 올 시즌 한 번 친 것인데 내년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잘 치는 타자들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 캠프 때부터 박병호가 왜 이렇게 잘 치나 싶어서 안 보는 척 주의 깊게 봤다. 오른팔이 몸에 잘 붙어서 나오더라. 그래서 살살 쳐도 짧고 길게 뻗을 수 있다. 나도 그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힘이 없으면 할 수 없는 폼이다. 오프시즌에 몸을 10kg 정도 불릴 생각도 갖고 있다.

- 손등 부상은 괜찮은가. 시즌 후 수술 여부는 어떻게 되나.
▲ 시즌 끝나자마자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일상 생활에는 큰 지장 없지만, 혹시 모르기 때문에 트레이너와 함께 종류별로 검사를 받아볼 생각이다.
- 어떻게 해서 야구를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 원래 어릴 때부터 야구 좋아했다. 지금 대전야구장 근처에 살았는데 빙그레 시절부터 한화팬이었다. 그때 빙그레는 정말 다이너마이트 타선이었다. 지금의 코치님들이 어릴적 내 우상이었다. 야구 자체를 좋아했고, 부모님의 반대에도 야구를 하게 됐다. 야구하는 게 멋있어 보였는데 막상 해보니 참 힘들더라.
- 공주고 졸업 후 한화에 지명받았는데 대학에 진학했다.
▲ 고등학교까지는 키도 작고 왜소했고, 힘도 부족했다. 그 대신 수비는 잘 했다. 일본 선수들처럼 재빠른 타입이었다. 사실 될 수 있으면 프로에 바로 가려고 했다. 집안 형편도 그렇고, 장남이라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교 3학년 때 동국대 한대화 감독님이 봉황대기가 끝나자마자 학교로 끌고가셨다(웃음). 당시 한화 스카우트팀의 김정무 팀장님도 "장래를 위해 대학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대학에 간 뒤로 웨이트를 시작하며 몸을 키우고, 새로운 나무 배트에도 적응할 수 있었다. 1학년 때부터 경기에 나가 경험도 쌓았다.
- 2010년 시즌 중 군입대로 3년 공백이 있었는데 어땠는가.
▲ 그 3년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타고난 운명은 어쩔 수 없다. 항상 매사에 조심해야 하겠지만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순리대로 마음 편하게 먹어야 한다. 괴롭고 힘들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어려울 때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됐다. 그때 사회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많이 봤는데 결국은 야구만큼 쉬운 게 없더라. 야구를 하고 있을 때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느꼈다. 가끔 야구가 안 될 때에는 오히려 야구를 잊어버리고 푹 쉬기도 한다. 하루종일 야구 생각만 하는 것보다는 낚시·골프 등 취미 생활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방법이다.
- 후반기 한화가 선전했는데 향후 팀의 비전은 어떻게 보나.
▲ 올해 남은 경기에서는 탈꼴찌를 하는 게 목표다. 내년에 투수력이 갖춰지면 분명 좋아질 것이다. 우리 타선이 절대 쉽지 않다. 더 좋은 투수들이 오고, 준비를 잘 한다면 중위권 이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 최하위인데 더 떨어질 수도 없다.
- 앞으로 야구 인생에서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
▲ 존경은 아니더라도 후배들이 동경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선수를 그만뒀을 때 '한화 이글스 송광민' 하면 알 수 있는 정도만 하면 좋겠다. 그 이후에는 공부를 하고 싶다. 늦더라도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해 교수를 해보는 게 제2의 계획이다. 지도자 생각은 별로 없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21년째 야구를 하고 있지만 내 생활이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 때까지 야구를 할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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