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대표하는 투수들의 2014년도 서서히 저물고 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비교적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지만 이런저런 사정에 자신의 100%를 발휘하지 못한 감은 어쩔 수 없다. 새삼 박찬호(42)의 전성기가 위대해 보이는 시점이다.
아시아 출신 투수들은 올 시즌 총 6명이 두 자릿수 승수를 달성하며 메이저리그(MLB)에서 거세지는 아시아의 힘을 과시했다. 27일(이하 한국시간) 현재 천웨인(볼티모어)이 16승을 기록, 올 시즌 아시아 투수 최다승을 예약한 가운데 이와쿠마 히사시(시애틀, 15승), 류현진(LA 다저스, 14승), 다나카 마사히로(뉴욕 양키스, 13승), 구로다 히로키(뉴욕 양키스, 11승), 그리고 다르빗슈 유(텍사스, 10승)까지 10승 이상을 거두며 자신들의 기량을 뽐냈다.
그러나 이는 시즌 초반 페이스에 비하면 다소 처지는 것이다. 역시 부상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왕첸밍(현 시카고 화이트삭스)이 가지고 있는 아시아 최다승 기록(19승)을 깨뜨릴 기세로 달려 나갔던 다나카가 대표적이다. 7월 오른 팔꿈치에 이상을 느껴 전열에서 이탈했고 겨우 수술을 면한 채 시즌 막판에야 복귀했다. 텍사스의 에이스인 다르빗슈도 역시 팔꿈치에 이상이 생겨 시즌을 조기에 마감한 덕에 10승에서 더 이상 나가지 못했다.

지난해 아시아 투수 공동 최다승을 기록했던 이와쿠마와 류현진도 부상 때문에 시즌을 완주하지는 못했다. 이와쿠마는 손가락 부상 때문에 아예 시즌 출발이 늦었다. 15승을 기록하며 좋은 시즌을 보냈지만 첫 한 달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역시 페이스가 좋았던 류현진 또한 두 차례의 부상자 명단(DL) 등재, 그리고 시즌 막판 왼 어깨 통증 재발로 15승 도전에 실패했다. 한 시즌을 꾸준히 던진 투수는 천웨인과 구로다 정도다.
복수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체격은 분명 야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경력을 지속시킬 수 있는 힘과 지속성은 결국 체격에서 나오게 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유독 체격에 집착하는 이유다. 실제 현재 MLB에 진출한 아시아권 투수들은 체격 측면에서 20년 전 아시아권 선수들에 비해 훨씬 발전해 있다. 하드웨어는 많이 발전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올해 잔부상이 속출하며 전반적인 시즌 점수를 깎아 먹었다. 새삼 박찬호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박찬호는 본격적으로 선발로 나선 1997년부터 LA 다저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01년까지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다. 이 기간 중 2000년에는 18승을 기록하는 등 세 번이나 15승 이상을 올렸다. 선구자격인 노모 히데오도 기록하지 못한 업적이며 후에 박찬호의 아시아 투수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깬(19승) 왕첸밍도 2년의 짧은 전성기에 그쳤다. 구로다가 이런 꾸준함에 근접하는 투수로 손꼽히나 인상 측면에서는 박찬호보다 못한 면이 있다.
현재 선수들의 부상 경력을 고려하면 앞으로 박찬호만큼 전성기를 길게 가져가는 아시아권 투수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대다수 선수들이 팔꿈치나 어깨에 한 차례 이상을 느꼈던 만큼 앞으로도 체계적인 관리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박찬호는 당시 이른바 ‘약물의 시대’에서 뛴 투수였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시즌을 완주하지 못하는 아시아권 투수들이 속출한 상황에서 박찬호의 이름 석 자가 다시 생각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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