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시즌 영화 관계자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영화계는 각각 롯데, CJ에서 배급한 '타짜-신의 손'과 '두근두근 내 인생'의 양강 체제를 예측했지만 복병이 있었으니 할리우드 영화 '비긴 어게인'이었다.
지난 8월 13일 개봉한 '비긴 어게인'은 조금씩 입소문을 쌓아가더니 9월 초 추석 연휴가 돼 포턴을 터뜨렸다. 차트 역주행을 벌이며 추석 시즌 내내 박스오피스 1위를 위협했고, 롱런은 이어져 10일 1일 오전 11시 누적관객 300만 고지를 돌파했다.
이로써 2009년 개봉작 '워낭소리'(최종 관객수 293만 4,409명)를 넘어 5년 만에 다양성 영화 역대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차지하고 나섰다.

여름시장 한국영화 대작 빅4의 경쟁 구도에서 '명량'이 1위를 한 건 차치하더라도, 무려 1700만 관객을 넘길리라는 건 예측하지 못했지만, 미국에서도 소규모 개봉했던 '비긴 어게인'이 대작들의 틈바구니에서 300만여명을 동원할 지도 몰랐던 일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그 영화 봤어?"라는 영화 대화의 장이 열리는 공간에서 '비긴 어게인'의 존재가 빠지지 않았고, 경쟁 관계에 놓인 영화 관계자들도 이 영화를 몰래(?) 보거나 궁금해했다. 그리고 '복병 주의보'가 나섰다. 언제 어디서 등장할 지 모르는 질 좋은 콘텐츠에 대한 경계다. 일종의 발전적인 경각심이라 할 만 하다.
영화들은 주로 경쟁작들과의 눈치 싸움 후 배급 시기를 결정하고, 상대방의 전력을 충분히 분석한다. 하지만 예상은 말그대로 예상에 머물 수 있다. 지난 2012년 가족 영화들이 가득한 설 극장가에서 '부러진 화살'이 다크 호스가 됐고, 더 거슬러 올라가 2009년 2월에는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스릴러 경쟁작들을 해체우며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흥행을 일궜다.
다시 되돌아와, 올 추석 대전을 지켜 본 한 배급 관계자는 '비긴 어게인'에 대해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비긴 어게인'이 발목을 잡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생각보다 큰 흥행력에 당황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라며 "물론 좋은 영화가 잘 되고 사랑받는 것은 응원할 일이지만, 예상을 빗나가는 라이벌의 등장은 난처할 수 밖에 없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비긴 어게인' 같은 경우는, '다양성 같지 않은 다양성 영화'라는 것도 흥행에 한 몫했다.
다양성 영화로 분류돼 있지만, 음악을 소재로 한 매끈한 상업영화인 '비긴 어게인'은 소위 말하는 어려운 영화, 독해가 필요한 영화라는 다양성 영화의 선입견을 깨는 것과 더불어 '작품성이 있는 좋은 영화를 즐기고 있다'라는 심리적 만족감을 줬기 때문이다.
짱짱한 원작과 홍보를 지닌 경쟁작들보다 상대적으로 기대감을 낮았기에 보고 나서 그 만족감이 배가 됐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영화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대 포장은 악영향을 끼칠 위험이 크다.
더불어 관객들이 과연 비주류(로 분류되는)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가, 에 대한 물음도 던진다. 물론 제작비와 톱스타 주연 등으로 이 영화가 다양성 영화에 속하는 데 이견이 있긴 하지만, 제작비 사이즈가 작은 영화를 일부러 부풀리고, 독립 영화로 보이는 것을 기피하며 콘텐츠가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어떻게든 좀 더 상업적인 영화로 포장하려는 한국 영화계의 움직임에 일침을 가한다. '비긴 어게인' 같은 경우는 다양성 영화 분류의 한 기준인 200개 내외 스크린에서 시작해 꾸준히 그 수와 상영횟수를 늘려나갔다.
하반기 한국 영화 화제작들이 많이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 또 어떤 생각지도 못한 보물이 등장할 지 모를 일이다. 물론 몇몇 케이스로 일반화를 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전세계 국가 중 한국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겨울왕국'이나 '어바웃 타임'과는 또 다르게 눈여겨 볼 사례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중 취향을 어떻게 저격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는 창작자와 소비자의 끊임없는 밀당이 존재함도 다시금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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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 어게인'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