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가 없죠? 사인펜으로 멍이라도 좀 그리고 나오는건데."
김현우(26, 삼성생명)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밝았다. 2년 전 런던과는 달리 그의 얼굴은 멀끔했고, 전신에 비오듯 흐르는 땀만이 치열한 사투의 흔적으로 남아 그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세계를 제패한 자가 가질 수 있는 여유였다. 그랜드슬램의 마지막 퍼즐인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건 김현우는 이날 한국 레슬링의 역사가 됐다.
김현우는 1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레슬링 남자 그레고로만형 75kg 결승전에서 가나쿠보 다케히로(일본)를 4-0으로 제압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장순(자유형 대표팀 감독)과 심권호(대한레슬링협회 이사)에 이은 한국의 역대 세 번째 그랜드슬램이다.

하지만 역사를 새로 쓴 김현우는 담담했다. 아니, 담담하다기보다 이 영광을 실감하지 못한 듯 했다. 차오르는 기쁨은 숨길 수 없었지만, 자신이 그토록이나 존경하던 심권호 선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랜드슬래머가 됐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던 것이다.
김현우는 "인천에서 하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또 그랜드슬램이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돼서 영광이다. 자만하지 않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전하며 시종일관 미소를 보였다. '레전드'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을 축하한다는 취재진에 인사에는 그저 "부끄럽다"며 웃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문을 연 김현우는 "내 꿈은 줄곧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그 이상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얼떨떨한 심정을 드러냈다. "지나가야 실감이 날 것 같다"며 웃은 김현우는 "항상 1인자일 수는 없는 법이다. 자만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이날의 기쁨을 뼛속 깊이 되새겼다.
하지만 넉살도 '그랜드슬램' 급이었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려던 김현우는 문득 생각난 듯 웃으며 "(얼굴이 너무 깨끗해서)임팩트가 없죠?"하고 취재진에게 되물었다. "너무 깨끗한 것 같아서 사인펜으로 멍이라도 좀 그리고 나오는건데 싶었다"며 농담을 던진 김현우는, 2년 전보다 훨씬 강해진 모습으로 그렇게 한국 레슬링의 부활을 선포했다.
costball@osen.co.kr
인천=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