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자고 이 좋은 '꽃보다'를 말렸던 걸까[꽃보다①]
OSEN 윤가이 기자
발행 2014.10.06 06: 42

“어르신들끼리 배낭여행 가는 거 어때?”
‘땡! 이상합니다. 별로예요. 단.언.컨.대. 망합니다’라고 속으로(만) 되뇌었다. “음... 뭐... 그게 재미있을까요?” 라고 에둘러 반응했지만 선뜻 긍정의 리액션은 나오지 않았다.
바야흐로 2013년 초, KBS에서 CJ E&M으로 이직하고 한바탕 떠들썩한 스포트라이트가 지나간 즈음이었다. 나영석 PD를 상암동에서 만난 일이 있다. 기자로서 응당 ‘이 인간이 여기선 뭘 하려고 그러나’하는 궁금증이 팽배하던 때다. 열혈 취재의식이 발동했지만 서두를 수 없었다. 마구 들이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박2일’로 예능 신화를 쓰고 단짝 파트너 이우정 작가와 함께 둥지를 옮긴 참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당시엔 방송가 안팎에서 모두 나 PD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울 때였다. 얼마나 부담이 될까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기도 한데, 그때 즈음 나 PD는 CJ E&M 이적 후 한 인터뷰에서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보여드리겠다”는 말도 했었다. 대체 더 나올 새로운 것이 있을까. 그때는 요즘 유행하는 육아 예능이나 관찰 예능의 붐도 시작되기 전이었다. 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 여행 버라이어티가 이미 정점을 찍은 상황, 예능의 ‘예’자도 모르는 기자로선 사실 새로운 포맷에 대한 기대감이 없던 시기다. 예능이 스튜디오에서 토크를 하거나 ‘1박2일’이나 ‘무한도전’처럼 밖에 나가서 뛰어다니는 거 말고 뭐가 더 있을까 싶었던 거다. 스토리텔링이라, 그것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본도 없는데 뭘 얼마나 더 얘기를 붙이고 감동을 안겨? 여행도 다닐 만큼 다녔고 소위 예능선수들도 뽑아 먹을 만큼 뽑아 먹은 것 같은데. 설마 ‘1박2일’처럼 여행을 하진 않겠지.
그래서 솔직히 온갖 상상을 해봤더랬다. 대표작이라곤 여행하는 ‘1박2일’이 최곤데 이걸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준다면? 그게 무얼까.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듣도 보도 못한 예능이 대체 뭐냔 말이다.
그리하여 막걸리집에서 만난 나 PD에게 보자마자 묻고 싶었지만 슬슬 말을 돌려가며 때를 보고 있는데 대뜸 그가 꺼내는 말이 “어르신들을 모시고 배낭여행을 가려고해”였다. 오잉? 네? 어르신이라고요? 배낭이요? 어디로요? “해외로.”
하아.. 당혹스러웠던 기억이다. ‘피디님, 왜 그러세요. 또 여행이에요? 아니 그것도 어르신이라니요.. 별론데. 진짜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짐짓 웃어보였다. 하지만 막걸릿잔을 돌리고 돌리며 술의 힘을 빌려 나름의 어필을 했던 건 같다. “이순재 할아버지가 정말로 가실까요? 신구 할아버지라... 그 사람들이 웃길 수 있을까요?”부터 “해외로 나가면 욕먹지 않을까요? ‘1박2일’하면서 전국 팔도 돌아다니던 양반이 해외로 나간다면, 시청자들이 반감을 가지진 않을까요?”해가며 회의적인 뉘앙스를 역력히 풍겼지만, 그는 확고했다. 뭐 이미 회의가 한창이었고 당시 이순재 신구 박근형 선생님 정도는 이미 섭외가 타진 중이던 상황이다. 감히 내가 뭐라고 이들을 말리랴.
그리곤 기사가 났다. ‘꽃보다 할배’라고,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할아버지가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다고. 네티즌의 반응도 주로 기자와 비슷했던 기억이다. ‘뭥미?’, ‘망하겠구만!’, ‘나PD 오버한다’하는 식의 조롱성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다. 하지만 이서진이 짐꾼으로 합류한다는 소식부터 출국 현장 사진 등이 보도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네티즌 사이 기대감이 증폭되기 시작한 것. 기자들도 한창 바빴다. ‘나영석의 새로운 도전은 성공할 것인가’, ‘할배들의 배낭여행은 과연 어떨까’하는 식의 관측성 기사들이 폭발했다. 나 PD나 이우정 작가 등 제작진 입장에선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망의 2013년 7월 5일이 밝았고 나 PD의 tvN 이적 후 첫 작품 ‘꽃보다 할배’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이는 기대이상으로 대박이 났다. 직진순재와 구야형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열광했고 요리왕 서지니는 내 옆에 두고 비서 삼고 싶은 완소 캐릭터에 등극했다. 많은 배낭여행객들이 거닐던 샹제리제 거리도 할배들이 걸으니 달라보였다. 노쇠했지만 그 무게 있는 발걸음엔 연륜이 담겨있었고,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나누는 대화엔 가늠할 수 없는 깊이가 느껴졌다. (물론 웃길 생각도 없는 어르신들이긴 했지만) 굳이 웃긴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저 쳐다보고 있으면 미소가 떠올랐다. 거기에 이서진이 예능에선 보도 못한 희대의 캐릭터로 가세하면서 희한한 포인트들이 더해졌다.
‘꽃보다 할배’는 유럽에 이어 대만, 스페인으로 옮겨 3번의 여행을 했다. 나라가 달라지고 짐꾼은 진화하고 할배들의 추억은 쌓였다. 시청률도 지상파를 압도하는 흥행 릴레이를 이었고 나 PD의 성공을, 기대이상의 성과를 극찬하는 시청자들과 언론의 찬사가 이어졌다. 그 가운데 ‘꽃보다 할배’는 ‘꽃보다 누나’로 그리고 지금, 인기리에 방영 중인 ‘꽃보다 청춘’으로 파생됐다.
‘꽃보다 청춘’은 나 PD 배낭여행 프로젝트의 완결판이다. 윤상 유희열 이적 등 세 뮤지션의 페루 여행기에 이어 유연석 바로 손호준 등 진짜 청춘들의 라오스 여행기가 연달아 전파를 타고 있다. 
조용히 고개를 떨군다. 내가 그때 왜 말렸을까. 왜 할배들과의 배낭여행을 그토록 우습게(?) 생각했던 걸까. 반성한다. 나의 좁았던 감성은 나 PD의 큰 그림을 꿰뚫지 못했다. 그는 보란 듯 '꽃보다'로 홈런을 날리며 이름값을 해내고 있다.  
나 PD는 노출이 잦은 사람이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명실 공히 스타 PD다. 이우정 작가는 ‘꽃보다’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동시에 주무른 천재 작가다. 하지만 이들은 소탈하다. 이젠 그 단단한 위치를 지키려고만 애쓸 법도 하건만 아니다. 어찌 보면 여전히 무모하다. 겁이 없고 도전을 좋아하고 늘 뜨겁다.
나 PD는 촬영장에나 사석에나 어디에나 그 가방을 들고 다닌다. 그 거무잡잡한 풀색의 A4용지 만한 가방, 비싼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튼튼할 수가 없다. 대체 그 가방을 몇 년 째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날 때마다, 방송에 등장할 때마다 그것이다. 투박하고 또 투박하다. 바닥이 닳은 그 가방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나 PD의 연출론을 보는 것 같다.
세련되지 않았지만 어쩐지 신선하고, 촌스러운 듯 하면서도 시대를 앞서간다. 예스러운 느낌을 버리지 않되,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길을 뚫어 나가고 있다. 중독된 시청자들이라면 평생 외면하지 못할, 나 PD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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