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한국 배드민턴의 이번 대회 성적을 매겨보자면, '열심히 싸웠으나 만족스럽지 못했다' 정도가 될 것 같다. 선수들의 노고를 무로 칼 자르듯 점수로 매겨 채점할 수 없는 노릇이고, 아시안게임이라고는 해도 '최강' 중국의 만리장성이 굳건하니 연일 금빛 스매시를 날리지 못했다고 해서 비판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7개의 금메달 중 최소 3~4개를 기대했던 당초의 목표를 크게 밑도는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라는 성적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끝난 대회에 대한 아쉬움은 뒤로 하고 이제 다시 2년 후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위해 구슬땀을 흘려야할 시간이다. 인천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2년 후 올림픽 무대에 도전할 한국 배드민턴 대표팀의 이번 대회를 정리해봤다.
▲ 12년 만에 만리장성 넘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남자 단체전 금메달이다. 남자 배드민턴 대표팀은 지난달 23일 열린 단체전 결승전에서 중국을 3-2로 제압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지난 1986 서울아시안게임과 2002 부산아시안게임 이후 세 번째이자, 12년 만의 일이다.

여전히 중국이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는 배드민턴에서, 한국은 마지막 5세트까지 무려 5시간에 걸친 혈투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남자 단식의 손완호(26, 국군체육부대) 남자 복식의 이용대(26, 삼성전기)-유연성(28, 국군체육부대) 그리고 마지막 남자 단식 이현일(34, MG새마을금고)이 3승을 챙기며 한국에 승리의 기쁨을 안겼다. 패했지만 끝까지 상대를 물고 늘어진 이동근(24, 요넥스)과 김사랑(24)-김기정(25, 이상 삼성전기) 조도 기쁨을 함께 했다.
결과적으로 남자 단체전에서 딴 금메달 하나가 배드민턴 대표팀의 처음이자 마지막 금메달이 된 셈이다. 하지만 12년 만에 중국을 넘고 따낸 금메달이 의미깊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 '돌아온 이현일'과 광저우-도하 恨풀이 실패한 '셔틀콕의 황태자'
이현일과 이용대의 희비가 미묘하게 엇갈렸다. 2012 런던올림픽 이후 태극마크를 반납했던 이현일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국가대표란 이름으로 라켓을 다시 쥐었다. 후배들을 위한 마음이었다. 세대교체로 인해 평균연령이 어려진 대표팀에 '맏형' 이현일이 중심을 잡아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현일은 남자 단체전 8강 일본전과 마지막 결승전 중국전에서 물러설 곳 없는 상황을 맞아 마지막 5단식을 승리로 이끌며 '뒷문' 역할을 단단히 했다. 뚝심있는 이현일의 스매시가 남자 배드민턴 대표팀을 살렸다.
하지만 한국 배드민턴의 간판스타인 '셔틀콕 황태자' 이용대는 2006 도하아시안게임과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이어 이번 대회서도 남자 복식 정상 등극에 실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 사이 두 번의 파트너 교체를 통해 각오를 더욱 단단히 한 이용대는 남자 단체전 금메달이라는 기쁜 결과를 앞세워 한풀이에 나섰으나 결승전서 인도네시아에 덜미를 잡혔다. 최근 이용대-유연성 조가 세계랭킹 1위에서 밀어낸 모하마드 아샨-헨드라 세티아완이 금메달을 목에 걸며 이용대의 꿈을 무너뜨렸다.
▲ 中 상대로 분전한 성지현-배연주와 '군 면제' 선수들, 미래는 밝다
어쨌든 대회는 끝났고, 이제 2년 후에 초점을 맞추고 준비해야한다. 최종성적은 만족스럽지 않았어도 희망적인 '그린라이트'는 여전하다. 은메달 하나, 동메달 하나에 그친 여자 배드민턴은 성지현(23, MG새마을금고)과 배연주(24, KGC인삼공사)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향한 희망의 선봉에 선다. 이미 한국 여자 배드민턴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한 성지현은 물론, 이번 대회에서 세계랭킹 3위 왕이한(중국)과 끈질긴 접전을 펼치며 저력을 선보인 배연주는 경험보다 더 값진 자신감을 얻었다. 이득춘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도 배연주의 2년 후에 대한 기대감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남자 대표팀도 2년 후를 기대해볼 만하다. 김사랑-김기정과 이동근, 전혁진(19, 동의대)가 이번 대회를 통해 병역을 면제받았고 고성현(27, 국군체육부대)도 1년 남은 복무 기간을 면제받았다. 남자 선수들에게 가장 큰 고비인 병역 문제가 해결된 만큼, 전력을 다해 2년 후를 준비할 수 있는 심적·시간적 여유를 얻은 셈이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국제대회 경험치를 쌓은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 장외 삼국지, 때아닌 승부조작 바람의혹에 곤욕
한편 이번 대회 배드민턴장에서는 선수들의 치열한 승부와는 별개로 한중일의 뜨거운 장외 삼국지가 펼쳐졌다. 시작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남자 단체전 8강에서 한국에 패한 후 "경기장 내의 바람이 한국에 유리하게 불었다"며 '바람 조작설'을 제기했다. 단순히 언론을 통해 이야기를 흘리는데 그치지 않고 일본배드민턴협회가 일본올림픽위원회(JOC)에 보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의 마스다 게이타 코치는 "코트가 바뀌어도 우리 선수 쪽으로 바람이 불더라"며 의심어린 시선을 보냈다.
일본이 문제를 제기하자 중국이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리용보 중국 감독은 남자 단체전 결승 후 "기술이나 전술이 아닌 다른 어떤 인위적인 요인 때문에 패했다"며 '바람 조작설'에 힘을 실었다.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린단도 "지금까지 선수생활에서 느껴보지 못한 바람을 경험했다. 고맙습니다, 한국. 고맙습니다, 인천"이라며 대회 조직위원회를 비꼬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기면 내 덕이고 지면 바람탓인, 웃지 못할 장외 삼국지였다.
OSEN=김희선 기자 costball@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