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농구월드컵 전패를 실패라고 단정했는가. 한국농구의 아시아 제패 비결은 바로 세계농구 경험이었다.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 대표팀은 3일 오후 인천삼산체육관에서 개최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전에서 이란과 접전 끝에 79-77로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한국은 2002년 부상 아시안게임 금메달 후 12년 만에 꿈에 그리던 정상을 밟았다. 아울러 한국농구는 아시안게임에서 남녀가 최초로 동반우승을 거두는 쾌거를 달성했다.
사실 아시안게임 직전 유재학호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8월 참가한 스페인 농구월드컵에서 한국은 5전 전패로 탈락했다. 1승 제물로 여겼던 앙골라와의 첫 판부터 졌다. 뒤늦게 경기감각이 올라왔지만 너무 늦었다. 대회 참가 전 제대로 된 A매치 한 번 치러보지 못한 탓이었다. 세계적 강호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와의 대결은 국내최고 선수들을 한 번에 ‘멘붕’에 빠뜨렸다. 좌절한 나머지 ‘농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한 선수도 있었다.

한국농구와 세계농구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개인기와 몸싸움이었다. 유재학 감독은 “몸이 서로 ‘퍽퍽’ 부딪치는 소리가 여기까지 나더라. 골밑에서 몸싸움이 거의 전쟁수준이었다”고 토로했다. 한국선수들의 체격이 작고 파워가 부족한 것도 문제였지만, 몸싸움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요령이 없었던 것이 더 문제였다.
농구월드컵 후 침체된 분위기를 다잡기가 쉽지 않았다. 몸싸움에 대비한다며 외국선수 6명을 연습상대로 데려왔지만 거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대표팀은 LG와 연습경기를 한 차례 하고 아시안게임에 임했다. 말 그대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유재학 감독의 카리스마와 전략, 코칭스태프들의 헌신, 선수들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값진 금빛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결승전에서 하메드 하다디(29, 이란)를 육탄으로 방어한 ‘맏형’ 김주성은 “세계선수권에서 충분한 가능성을 보였다. 세계선수권에서 유럽선수들과 했던 경험이 아시안게임서 나타났다. 과정 때문에 결과가 좋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5패를 당했다고 농구월드컵을 실패로 규정한 것은 잘못이다. 선수들은 더 큰 무대서 보고 배운 것이 어마어마했다. 한국이 지속적으로 A매치를 개최하고 국제무대에 도전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의 아시아제패는 12년 만의 경사다. 선수들은 마음껏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수뇌부들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 올해가 아닌 앞으로 어떻게 한국농구를 이끌어갈 것인지 장기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금메달을 딴 뒤 유재학 감독은 “내년부터는 더 힘들다.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 있는 아시아선수권이 열린다. 중국도 나날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필리핀은 블라치를 데려올 것이다. 이란도 설욕을 벼르고 있다. 점점 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만 귀화선수 없이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지금이라도 연령대별 대표팀을 구성해 전임감독이 가르치는 체재가 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금메달의 주역이었던 김주성은 은퇴한다. 슈퍼스타 문태종도 더 이상 국가대표로 뛰지 않겠다고 했다. ‘만수’ 유재학 감독은 이제 모비스에 전념한다. 이제 특정 인물에 기대서 단기간의 조련으로 금메달을 따내는 시대는 지났다. 한국농구는 이제 지속적으로 세계무대에 도전할 수 있는 견고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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