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핸드볼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남녀 동반 정상 등극에 실패했다.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12년만에 이뤄질 것 같던 꿈은 남자대표팀이 카타르에 패하면서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핸드볼은 이번 대회를 통해 남녀 모두 여전히 아시아 최강이란 점을 재확인했다. 여자팀은 8년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며 4년 전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의 아쉬움을 달랬다. 남자팀은 비록 중동의 외인 바람에 2연속 금메달에 실패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깨닫게 해줬다.
▲ 성공한 세대교체
대회 전 한정규 대한핸드볼협회 회장 직무대행은 임영철 감독이 이끄는 여자팀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금메달을 확신했다. 한 대행은 "여자팀은 아시아를 떠나 유럽팀과 경쟁하고 있다. 따라서 아시안게임은 2016년 리우 하계올림픽으로 가는 중간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이 리우 올림픽으로 가는 여정 중 하나라고 보고 있었다. 그만큼 금메달을 자신했다.

때문에 여자팀의 우승은 당연한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그 의미는 분명 달랐다. 무게를 2년 뒤 열리는 리우 올림픽에 두고 있는 만큼 '우생순'으로부터의 '세대교체의 성공'이라는 또 하나의 빛나는 성과가 마련됐다. 류은희(24), 김온아(26), 이은비(24) 등 2년 후면 더욱 만개할 주축들이 완성됐다. "지금 체력이라면 유럽 어느 팀과 붙어도 지지 않는다"는 임 감독은 리우 올림픽에 대해 "지금의 멤버를 중심으로 1~2명 정도 살을 붙일 예정이다. 유럽과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 극복하지 못한 중동의 변수
남녀 동반 우승의 가장 큰 변수는 김태훈 감독이 이끄는 남자팀이었다. 대회 전부터 중동에 불고 있던 거센 외인 바람이 걸림돌로 알려졌다. 특히 카타르의 경우는 엔트리 절반 이상이 다른 나라로 채워져 우려를 나타냈다. 튀니지, 쿠바, 시리아, 보스니아, 프랑스, 몬테네그로, 스페인 등 다국적팀으로 꾸려 경계대상이 됐다. 어쩌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던 남자팀에게는 이번 대회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체력, 파워의 싸움이었다.
세대교체를 잠시 미룬 채 대회 우승에 전력했던 남자팀에게는 충격파가 제법 있었다. 2년 후 리우로 가기 위해서는 남은 기간 동안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중동의 변수가 결국 이런 숙제를 안긴 것이다. 이현식(22, 웰컴론), 황도엽(21, 한국체대) 등이 얼마나 성장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또 베테랑들의 연이은 국가대표 은퇴로 이은호(25, 충남체육회), 엄효원(28, 인천도시공사) 등이 팀 중심이 돼야 한다.
▲ 자라나는 꿈나무...확실한 텃밭
성인대표팀이 밝은 전망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는 결국 든든한 인프라다. 최근 여자주니어대표팀은 '우생순' 선배들도 이루지 못했던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정상에 올랐다. 또 여자청소년대표팀은 난징청소년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남자청소년대표 역시 중동의 거센 모레바람을 잠재우고 9년 만에 정상에 복귀했다. 이는 아낌없는 투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우연이 아니다.
2004년 아테테올림픽에서 탄생한 '우생순'은 핸드볼을 팬들의 뇌리에 남겨놓은 고마운 상징어였다. 그러나 어려운 현실이 더 반영되어 있는 단어였다는 점에서 지금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는 핸드볼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핸드볼은 지난 2008년부터 SK그룹의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지원 속에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핸드볼협회는 핸드볼을 야구와 축구에 이은 국내 3대 인기 스포츠로 만든다는 원대한 계획 아래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가장 큰 성과는 핸드볼인들의 염원과도 같았던 핸드볼전용경기장의 건설이었다. 2011년 10월 완공된 SK핸드볼전용경기장은 2012 런던올림픽 남자핸드볼 아시아지역예선을 비롯해 핸드볼코리아리그, 국제대회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터전이 돼줬다.
특히 2011년 핸드볼코리아리그의 창설은 든든하고 안정적인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핸드볼의 근간이 되어 오고 있다. 단순히 명맥만 유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 해 챔피언결정전에 초청됐던 하비에르 알바레즈, 이안 부스테멘테 2명의 스페인 심판은 생각보다 높은 핸드볼 수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자부 삼척시청과 인천시청은 유럽 클럽팀들과 겨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가대표들은 매년 유럽 전지훈련에 나서고 있다. 이번 대표팀도 여자는 프랑스, 남자는 독일로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또 국제대회도 매년 1회 이상 유치하면서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 유명 코치를 초빙해 부분적인 기량 향상을 꾀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말부터는 한덕현 중앙대 신경정신과 교수를 초빙, 심리적인 완성도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핸드볼 외교에도 힘쓰고 있다. 정형균 대한핸드볼협회 상임부회장이 2012년 제5대 동아시아핸드볼연맹 5대 회장에 선임됐다. 2013년에는 아시아핸드볼연맹 기술위원장과 세계핸드볼연맹 기술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2012년 국제심판 자격을 획득한 이석, 구본옥 심판은 대한민국 핸드볼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또 노르웨이협회와는 지난 해 4년 계약으로 업무 협약을 맺어 기술 및 행정적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 든든한 뒷받침...이제는 '매생순'
한 핸드볼관계자는 "핸드볼은 이제 더 이상 배고픈 종목이 아니다. SK가 매년 100억 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되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지금 핸드볼을 하는 어린 선수들은 '매생순(매일이 생애 최고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을 지 모른다"고 말했다.
핸드볼협회는 '비전 2020'을 발표했다. 2010년 발표해 착실하게 이를 잘 수행해오고 있다. 계획대로 런던올림픽까지 기반을 구축한 협회는 2016 리우 올림픽까지 가치창출체계를 구축하려 한다. 이후에는 자립이 가능할 수 있는 단계를 만들어가려는 것이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다시 한 번 경쟁력과 관중동원력을 갖춘 구기종목임을 깨달은 핸드볼의 '매생순' 시대가 언제까지 펼쳐질지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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