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가수에 치여, 개그맨은 배우에 밀려
OSEN 윤가이 기자
발행 2014.10.06 07: 23

갈수록 배우와 가수, 예능인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요즘이다. 가수가 연기를 겸업하거나 배우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고정으로 활약하는 등 분야를 넘나드는 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90년대부터 나타난 일이지만 최근 수년간 크게 활성화된 듯 보인다. 물론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모를 고충을 겪고 있다.
최근 방영 중인 지상파 드라마들 중에는 배우 아닌 가수들이 주인공 자리를 꿰찬 경우가 허다하다. SBS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는 비(정지훈)와 크리스탈(정수정)이 남녀주인공으로 나서며 KBS 2TV '연애의 발견'에도 본래 신화의 멤버인 에릭(문정혁)이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다. MBC '야경꾼일지'에도 동방신기 유노윤호(정윤호)가 자리하고 있고 MBC '내생애 봄날'엔 소녀시대 수영이 여주인공으로 나섰다. KBS 2TV 주말연속극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는 제국의 아이들 박형식이 굵직한 역할을 소화 중이기도 하다.
사실상 대부분의 드라마에 가수 또는 아이돌 그룹 출신이 주요 배역을 맡고 있는 상황. 과거엔 조연이나 단역 정도로 극의 재미를 더하는 역할을 했던 가수들은 이제 어엿한 주인공으로 올라섰다. 인기 가수나 아이돌을 주연으로 캐스팅하지 않으면 국내 안방에서 흥행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판단과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부족한 현실이 함께 반영된 결과다.

뿐만 아니다. 일자리가 줄어든 배우들은 의외로 예능에 진출해 수확을 거두고 있다. 물론 작품이 없어 연기 대신 예능을 선택한 건 아니겠지만 분명 의외의 영역 확장이 큰 수혜를 가져온 경우들이 늘어났다.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송일국이 최근의 대표 케이스. 이외에도 인기 주말 버라이어티를 살펴보면 '일밤-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과 룸메이트', KBS 2TV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와 1박2일' 등 모든 프로그램에서 전문 예능인이 아닌 가수나 배우, 스포츠 스타들이 대거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한정된 개그맨이나 예능 MC들을 대신한 뉴페이스가 최근의 관찰 예능이나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의외의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연예인들의 장르 뛰어넘기 덕분에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더욱 풍성한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된 게 사실.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는 가수들의 신선한 매력을 보거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나 배우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르 파괴(?)는 드라마나 영화 캐스팅에 있어 배우가 가수에게 치이게 만들기도 하고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서도 정작 개그맨들의 밥그릇이 비게 되는 사례로 나타난다. 본업에서 활약하지 못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타 분야로 넘어가거나 의도치 않게 오랜 공백을 보내게 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
노래든 춤이든 연기든 개그든 다양한 방면에서 재능을 가진 이들을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칭한다. 결국 만능 엔터테이너들이 성장하고 탄생하면서 이 같은 영역 파괴와 확장 현상은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연예인들 입장에선 결국 본업의 분야에서 누구보다 큰 경쟁력을 가지는 길만이 밥그릇을 챙길 수 있는 방법인 셈. 아니라면 장르에 국한을 두지 말고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재주를 기르는 것도 살 길이다.
이 같은 현상을 옳다거나 그르다고 판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는 일할 기회를 잃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더 많은 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사랑받을 수도 있다. 배우든 가수든 개그맨이든 입지를 굳히고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한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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