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현성 “모든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장현성은 '사랑이 이긴다'에서 최정원이 맡은 은아의 남편인 의사 상현 역을 맡았다. 상현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의사지만,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인물. 영화에는 택시기사와 택시비 3만원의 지불 여부를 놓고 집요한 실랑이를 벌이는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최정원은 여기서 보여준 장현성의 연기에 대해 “장현성 배우다”라고 한 마디로 표현하며 칭찬했다. 미소를 지으며 최정원의 이야기를 듣던 장현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3만원이 저는 사람 인생이 그런 거 같아요. 어떤 순간에 어떻게 걸리느냐. ‘히든싱어’를 보면 가수들이 자기가 가진 행운에 대해 감사해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위대한 가수들보다 가창으로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죠. 배우도 마찬가지에요. 나보다 연기를 잘하는 사람도 어디선가 다른 일을 하는 분이 있을 수 있고. 그 모든 인생 하나하나에 3만원이 다 있어요. 누군가에게 그건 명예일 수도 있고, 돈일 수 있고, 자식의 성적일 수 있고 그런 것들을 비틀어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사랑이 이긴다’는 보편적이랄 수 있는 주제와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소재를 제외하고는 여러모로 특별함이 가득한 영화다. 특히 영화 중간 중간 등장하는 동물의 형상이나 물의 이미지, 다소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세트 등은 영화에 신선함을 부여한다. 지난 6월 현장공개에서 한 차례 공개된 적 있었던 독특한 세트에 대해 장현성은 “고민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놔 웃음을 자아냈다.
“늘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게 현장에서 ‘감독질’하지 말자는 거예요. 경력이 생기고 영화판 자체가 젊으니까 선배 축에 들어가고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감독질을 하는 배우들이 있어요. 그 사람이 잘난 척을 하려고 한다기보다는 현재 답답해서 잘해보자고 하는 얘기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게 결과가 생기는 일이 많아요. 그래서 절대 그런 걸 안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 세트를 보고 세 번 고민했습니다.(웃음) 감독님한테 애기해야하는 거 아냐? ‘감독님 저 세트가, 저렇게 하시는 거냐’ 물었죠.”

그의 의문은 시간이 흐르고 민병훈 감독에 대한 신뢰로 바뀌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아무렇지 않게 웃으시면서 엄마는 물의 이미지, 나는 불의 이미지, 앞에 기이한 조형물이 있다. 그런 상징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면서 ‘믿고 갑시다’라고 말하는데 그 순간 배우가 할 수 있는 건 ‘못해’ 이런 게 아니라 믿고 가는 게 최선의 방법이죠. 사실 이 작품을 할 때 ‘터치’로 감독님과 함께 한 유준상에게 전화를 했는데 ‘감독님 최고야’라고 말해줬거든요? 저도 다음 작품에서 누군가 물어본다면 대답할 수 있어요. ‘괜찮아, 믿고 가’라고요.”
정신적으로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장현성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듯싶었다. 특히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두 아들 준우-준서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자상한 아빠의 면모를 보여줬던만큼 영화를 찍으며 느꼈던 점이 남다를 듯 했다.
“이제 아이들이 12살, 8살이에요. 우리 아이도 영어 과외는 하고 해요. 본인이 하고 싶어 한다고 하니까요. 어쨌든 우리 아이들이 받는 왜 너무 뻔하게 걸어갈 길들이 안타까워요, 나만 해도 어릴 때는 밥 먹고, 나가서 산에 놀고 들에서 놀다가 배고플 때 되면 이집 저집 밥 먹어라 뛰어가서 밥 먹고 물 먹고 놀았어요. 그게 하루의 일과인데 그렇게 살다 누구는 변호사가 돼 있고 누구는 미용실에서 머리 깎는 애도 꼬치 집 주방장도 있고 모두 사회 구석구석 자신의 몫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어른들이 그렇게 만들었죠. 지금 제가 40대 중반인데 그렇게 살게 한 데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 같아요. 대단히 진심으로 미안해요. 우리 아이들한테도 길에 다니는 아이들한테도 미안해요. 사회면에 나오는 청소년들한테도 미안하고요, 배에서 가라앉은 애들한테도 미안해요. 은마 아파트에서 매일 떨어지는 아이들한테 미안하고, 우리가 그것에 대한 책임이 있어요.”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그의 진지한 표정에서 진심이 묻어나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제 나름대로 방법 찾고 있어요. 아이들한테 그런 편이에요. ‘몇 등 했니?’를 묻기보다 ‘아빠가 배우로 살아보니까, 책을 많이 읽은 배우하고 책 많이 읽지 않은 배우가 다르더라. 기왕이면 책 많이 읽는 게 도움이 된다. 굳이 독서량이 많지 않아도 자기 자신한테 집중할 사람을 많이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시간이 반복될수록 달라지더라’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줘요. 영어 같은 것도 ‘배우로 살면서 영화제도 다니고 영어를 잘하는 배우는 영어 못하는 배우보다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다’고 얘기해주고요.”
이어 그는 상업적이지 않아도,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을 던질 수 있는 ‘사랑이 이긴다’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게 너희 인생이야’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나 예술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다 시작할 때는 막막해요.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이, ‘나는 왜 한다고 그랬지’예요. 어떤 아이의 비극적인 순간이 이 영화의 주된 소재에요. 그 행위 때문에 벌어지는 인생들의 고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내야하는 시간들, 실낱같은 희망이 통째로 영화를 지탱하는 그런 시간들이었어요. 물론 롤러코스터 같은 영화도 필요해요. 그런 영화가 보고 싶을 때도 있죠. 그렇지만 어떤 순간, 다 알고 있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흥밋거리조차 되지 못해 뉴스에도 안 나오고 모두 모른척하고, 상관없는 척하면서 사는 비극성, 비극적인 서사를 이렇게 칼로 쑥 자르고 그 단면을 보여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이게 너희 인생이야’ 그런 영화나 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③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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