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로맨틱 코미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임찬상 감독)는 신민아의 괄목상대 급 연기와 조정석의 폭넓은 쓰임새를 다시 보게 만든 영화다. 수지와 더불어 ‘건축학개론’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한 조정석은 이 출세작으로 이름을 알린 뒤 세 편의 영화와 두 편의 드라마에 잇따라 출연했지만 예상 만큼의 강렬한 포만감과 임팩트를 주지는 못 했다.
오래 전부터 뮤지컬 쪽에선 검증된 스타였지만, 시선을 압도할 만한 마스크와 신체조건이 아니라는 점에서 TV와 스크린에선 스타성을 놓고 여전히 평가가 엇갈리는 배우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연기력은 딱히 흠잡을 데가 없지만 티케팅 파워를 갖기 위해 필수적인 배우로서의 아우라와 카리스마를 겸비했는지 여부는 여전히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지 못 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연기가 가장 빛났던 건 ‘관상’이었다. 내경 역 송강호의 처남이자 이종석을 돕는 팽헌으로 출연해 코믹과 진지한 연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균형 감각과 순발력이 기대 이상이었다. 톱클래스 송강호와 당시만 해도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경계선상의 연기자 이종석 사이에서 쿠션 역할과 함께 자신의 캐릭터를 충분히 어필하는 모습을 보며 조만간 한국 영화의 차세대 동력이 되겠다는 기대를 품게 했다.

하지만 ‘강철대오-구국의 철가방’과 ‘역린’에선 그런 기대가 양껏 채워지지 않았다. 특히 ‘강철대오’를 보면서 너무 조급하게 주인공 욕심을 내는 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까지 갖게 했다. ‘역린’도 정은채와의 멜로 설정이 시간 관계상 대거 편집되면서 을수의 캐릭터가 어정쩡해진 탓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역할과 케미가 맞지 않았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조정석은 마치 1급수를 만난 쉬리처럼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는 느낌이다. 극중 9급 공무원으로 대변되는 평범한 30대 한국 기혼남에 썩 잘 어울렸고, 무엇보다 상대배우 신민아와의 호흡이 기대 이상이었다. 두 사람이 영화 촬영하며 실제로 호감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궁금할 정도로 감정을 주고받는 호흡이 빼어나 영화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
영화 흥행이 일종의 관객과의 기 싸움이라고 한다면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일찌감치 승기를 잡을 것 같다. 상영 10분 이내에 등장인물의 설명을 모두 끝낸 영화는 중반까지 신혼부부가 겪는 다양한 코믹 에피소드를 전개하며 관객을 유쾌한 웃음 롤러코스터에 탑승시킨다. 벚꽃 프러포즈와 집들이, 자장면 등 24년 전 원작의 주요 장면을 곁들이며 꽤 순도 높은 웃음을 쉴 새 없이 제공한다.
조정석이 이 영화를 통해 구매력 있는 배우로 한 단계 올라설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건 시도 때도 없이 바지를 내리고 결정적 순간 내복을 탓하는 좌충우돌 코믹 연기 외에 전혀 다른 결의 묵직한 연기까지 너무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극중 부부싸움의 원인이기도 한 시 쓰기에 대한 열정과 존경하던 노시인의 고독사와 그를 끝까지 돌보지 못했다는 말단 사회복지사 공무원의 자책과 회한을 111분 안에 잘 포개어 보여주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속 조정석을 보다보면 한때 ‘색즉시공’ ‘위대한 유산’으로 전성기를 보낸 임창정의 전매특허인 ‘전반전 웃음, 후반전 페이소스 눈물’의 맥락과 흥행 공식을 따르는 것 같으면서도 분명히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 이 방면의 많은 연기자들이 주어진 연기를 서너 단계로 슬라이스 해 보여줬다면 조정석은 더 나아가 이를 열 단계쯤으로 더 잘게 나눠 감정과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느낌이다. 자연히 연기가 섬세해지고 이는 관객의 감정 이입을 확실하게 돕는 윤활유 구실을 하게 된다.
우연히 축구 국가대표들이 페널티킥 연습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골문을 아홉 등분해 숫자를 매긴 뒤 감독이 주문하는 숫자 구역에 정확히 골을 집어넣는 훈련이었다. 3년간 작품 활동을 통해 단맛과 쓴맛을 두루 맛본 조정석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로 연출자 못지않은 넓은 시야를 유감없이 잘 활용했고, 야구로 치면 배트를 짧게 쥐고 타석에 들어섰다. 외야 깊숙한 장타나 홈런 욕심 보다 어떻게든 1루에 살아 나가겠다는 절실한 팀 배팅이 자신 뿐 아니라 영화도 살렸다는 생각이다. 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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