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투’ 여건욱, 밴와트 공백 지웠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4.10.06 21: 14

온통 트래비스 밴와트(28, SK)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대체 선발로 마운드에 오른 여건욱(28)이 역투를 선보이며 밴와트의 공백을 완벽하게 지워냈다. 1승은 물론 SK의 향후 마운드 운영에도 한줄기 빛이 될 만한 투구였다.
여건욱은 6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8이닝 동안 115개의 공을 던지며 3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치며 시즌 3승(3패)째를 따냈다. 올 시즌 두 번째 선발승이자 지난 9월 7일 잠실 두산전 7이닝 2실점 호투를 뛰어 넘는 생애 최고의 투구였다. 115개의 투구수, 8이닝은 모두 데뷔 후 최다였다.
사실 SK는 이날 경기를 앞두고 한 차례 홍역을 겪었다. 바로 대체 외국인 선수로 입단한 뒤 11경기에서 9승을 쓸어 담으며 후반기 SK의 대도약을 이끈 밴와트의 팔꿈치 부상 소식이었다. 갑작스러운 밴와트의 이탈에 여러 가지 추측이 나돌기도 하는 등 구단 안팎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이유가 어쨌든 명확한 것은 밴와트가 팔꿈치 부상으로 당분간 경기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력의 치명타였다.

김광현과 함께 SK의 원투펀치로 활약하는 밴와트의 이탈에 막판 4위 탈환을 노리는 SK 앞에도 빨간 불이 커졌다. 결국 누군가는 이 공백을 메워야 했고 이날 대체 선발로는 여건욱이 낙점됐다. 후반기 상승세에 기대가 걸리기는 했지만 밴와트와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힘겨운 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건욱의 투구는 인상적이었다. 한 경기 성적만 놓고 보면 그 어떤 투수도 부럽지 않았다.
여건욱은 최고 140㎞ 중·후반대의 빠르고 묵직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무시 못할 장점이 있다. 문제는 제구, 그리고 결정구의 위력이었다. 지난 1년 반 동안 여건욱이 선발진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던 이유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두 가지 부문에서 모두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여건욱은 이날 한 차원 성장한 모습을 보이며 한화 타선을 공략했다.
볼넷이 없었을 정도로 제구는 비교적 안정됐다. 볼 카운트가 몰리는 상황에서 당황하는 모습도 확실히 줄어들었다. 체인지업의 덕이었다. 우타자가 볼 때 몸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은 예리하게 떨어지며 한화 타자들의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타자들이 체인지업에 대비할 때는 140㎞ 중반대의 빠른 직구로 정면 승부를 펼치며 허를 찔렀다. 안정된 로케이션에 한화 타자들은 좀처럼 여건욱의 공을 쳐내지 못했다.
1회부터 4회까지는 안정된 피칭을 이어가며 무실점으로 버텼다. 1회 무사 1루에서 정근우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낸 것에 2루로 뛰던 송광민까지 잡아낸 것이 컸다. 당초 판정은 세이프였으나 심판합의판정 끝에 아웃으로 번복됐다. 안정을 찾은 여건욱은 5회까지 14타자 연속 범타 행진을 이어가며 한화 타선을 틀어막았다. 야수들도 1회에만 7안타 5득점에 성공하며 여건욱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6회와 7회도 잘 넘긴 여건욱은 투구수가 100개를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8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지친 기색이 없었다. 마지막 타자 장운호를 삼진으로 잡은 직구 구속은 144㎞가 찍혔다. 그렇게 여건욱은 팀의 11-1 대승을 이끌며 선발진의 차세대 주자임을 완벽하게 입증해 보였다. 적어도 이날만큼은 SK 팬들이 밴와트의 이름을 잊으며 편안하게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여건욱이 드디어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알껍질을 조금씩 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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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백승철 기자 baik@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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