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볼링은 온갖 견제에도 제 몫을 다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8개의 금메달을 따낸 펜싱과 사격에 이어 정구와의 함께 2번째로 많은 7개의 금메달을 한국에 안겼다.
대회 전 목표는 2010년 광저우 대회의 금 8개, 은 5개, 동 2개를 넘어서는 것. 그러나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금 7개, 은 1개, 동 6개로 다소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2위 일본(금 2개, 은 1개)을 월등하게 앞섰다. 한국이 대회 종합 2위에 오르는 데 기여한 바가 충분하다는 평가다.
▲ 악재, 견제 속에서도 꿋꿋

볼링대표팀은 대회 2개월을 앞두고 불미스런 일로 총감독이 교체되는 내홍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후임 강대연 총감독이 빠르게 대표팀을 안정화시켰다.
대회를 불과 3개월여 앞두고는 레인 패턴 변화라는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아시아볼링연맹(ABF)이 한국의 독식을 막고자 바꾼 것이었다. 이는 한국 홈이라는 점과 광저우를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까지 더해져 대표팀에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남자팀은 이런 부담 때문에 개인전과 2인조전에서 노메달에 그쳤다. 3인조전에서 동메달을 따고 나서야 몸이 풀렸다. 이후 5인조, 개인종합, 마스터스 금을 휩쓸었고 박종우가 3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반면 여자팀은 '늦깎이' 이나영을 앞세워 제 페이스를 찾아갔다. 이나영이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따낸 후 2인, 3인조, 개인종합, 마스터스까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나영은 대회에 참가한 전체 한국 선수단 유일의 4관왕에 이름을 올렸다.
▲ 2연속 4관왕 배출 그러나...
이나영의 4관왕은 역대 아시안게임 한국 선수 최다 관왕 기록과 타이를 이룬 것이다. 지난 1986년 서울 대회에서 양창훈(양궁)과 유진선(테니스),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여자 볼링 황선옥('류서연'으로 개명)이 세운 기록과 같다. 이렇듯 볼링은 두 대회 연속 4관왕을 배출, 아시안게임에서는 소홀히 할 수 없는 '금밭' 스포츠임을 증명해냈다.
이번 대회에서 4관왕은 최다 관왕이기도 했다. 하기노 고스케(일본, 수영)를 비롯해 야오 진난(체조), 닝 제타오(수영), 센 두오(수영, 이상 중국) 4명만이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나영은 한국 선수로는 당당히 이 대열에 꼈다. 더구나 이나영은 메달 수에서도 6개로 전종목에 걸쳐 메달을 따냈다. 하기노에 1개 뒤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나영은 대회 MVP 후보 명단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일정이 늦게 시작되는 종목에 불리한 제도적 문제점이긴 하지만 볼링으로 보나 한국으로 보나 안타까웠다. 다행히 이나영은 폐마식에 나서는 8명의 기수 중 한 명으로 선정돼 모습을 비췄다.

▲ 볼링전용구장과 올림픽 진입
볼링은 올림픽 종목이 아니다. 사실 아시안게임이 아니면 조명을 받기가 힘든 비인기 종목 중에서도 비인기다. 다른 종목과 비교해 덜 격렬하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적으로 폄하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며칠 동안 매일 6경기를 치르는 동안 꾸준하게 집중력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볼링은 크게 두 가지 숙원 사업이 있다. 우선 볼링전용구장을 짓는 것이다. 김길두 협회장은 "순천, 경북(안동), 천안, 충북(보은), 울산 등에서 유치의사를 보였다. 예산이 200억 원 정도 드는 만큼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본격적인 논의가 있을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하나는 올림픽 정식 종목 진입이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올림픽 진입을 위한 활동이 서서히 적극성을 띠고 있다. 2020년 정도에 볼링의 올림픽 진입 가능성 여부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살펴보면 성적과는 달리 여러 문제점이 지적됐다. 경기장 어프로치와 관중석이 너무 좁아 쾌적하지 못했고 위치적으로도 관중들이 찾기에 불편했다. 무료 입장이 가능했던 경기장이라는 점에서 협회는 좀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했다.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비인기 종목 볼링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세계 최정상급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은 인정받아 마땅해 보인다.
letmeou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