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를 정해놓지 않고 주저없이 뛰겠다".
한화 2루수 정근우(32)가 한국프로야구 도루 역사의 새 페이지를 장식했다. 정근우는 지난 7일 대전 롯데전에 3회 2루 도루를 성공시켰다. 시즌 31호 도루. 이 도루로 정근우는 한국프로야구 사상 8번째 개인 통산 300도루 기록을 세웠다. 지난 7월30일 목동 넥센전에서 사상 첫 9년 연속 20도루에 이어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기록을 달성한 순간이었다.
정근우의 300도루는 역대 8번째 기록이지만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순수 내야수로는 두 번째로 300도루를 돌파했기 때문이다. 종전 300도루 이상 달성한 전준호(550개) 이종범(510개) 정수근(474개) 이대형(401개) 이순철(371개) 김일권(363개) 김주찬(351개)이 있는데 그들 중 내야수로 300도루 는 1993~1997년 유격수로 310도루를 한 이종범이 유일했다.

정근우는 2005~2006년에만 해도 2루수·유격수·좌익수를 오갔지만 2007년 이후로 풀타임 2루수로 자리 잡았다.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내야수로 보냈는데 외야수보다 상대적으로 체력적인 부담이 큰 만큼 300도루가 더욱 빛난다. 특히 2루수는 유격수보다 체력 소모가 적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두 포지션 모두 소화한 한화 한상훈은 "2루수가 더 체력 소모가 크다. 드러나지 않는 백업·중계 플레이까지 해야 할 것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정근우의 300도루는 내야수, 그것도 2루수라서 노력의 산물이라고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이날 도루 역시 옆구리 통증을 딛고 과감하게 뛴 결과였다. 정근우는 "시즌 전 목표는 9년 연속 20도루였다. 그걸 하고 나니까 300도루에 11개가 남아 욕심이 생겼다.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다. 내 등번호가 8번인데 8번째 기록이라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활짝 웃어보였다.
올 시즌 한화에 와서 정근우는 도루 성공률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31개의 도루를 성공하는 동안 실패가 3개뿐 도루성공률이 무려 91.2%에 달한다. 10도루 이상 선수 중에서 유일한 90%대로 1위. 지난해까지 그의 통산 도루성공률은 72.9%로 100도루 이상한 선수 중에서 26위였다. 그런데 올해는 거의 20% 가까이 성공률이 상승하며 기록 달성에서도 탄력을 받았다.
정근우는 "올해 도루 시도 자체는 많지 않았지만 성공률이 높다. 경기 흐름에 맞춰 상대 투수 퀵모션과 볼 배합을 보고 뛸 때 과감하게 뛰고 있다"며 "이종범·강석천 코치님과 도루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도루 스타트와 투수의 견제가 들어올 시점에 대한 조언들을 받은 덕분에 성공률이 높아질 수 있었다"고 비결을 설명했다.
올해로 만 32세로 어느덧 30대 중반을 향하는 정근우는 과거처럼 아주 빠르지는 않다. 대신 노련함이 더해졌고, 훨씬 높은 확률로 도루를 성공시키고 있다. 그는 앞으로 도루 목표에 대해 "다음 기록은 아직 생각한 게 없다. 숫자를 정해 놓지 않고 앞으로도 도루 상황이 되면 주저 없이 뛰겠다"고 다짐했다. 악바리근성에 노련함이 더해진 정근우의 발이라면 400도루, 500도루도 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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