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호 "선한 눈의 살인마, 제가 멸치라.." [인터뷰]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4.10.08 10: 27

선한 얼굴의 살인마다. 금방이라도 예쁜 눈웃음을 지을 것 같은데 손에는 사람을 죽일 둔기를 들었다.
"안 해봤던 역할들을 해보고 싶었어요. 여태까지 해온 것과는 다른 것들을 해보고 싶었고, 평범하지 않은 역도 연기하고 싶었죠. 그래서 군 제대 후 '롤러코스터', '무정도시', 그리고 '맨홀'을 하게 됐어요. 시나리오가 재미있어서 선택했다기 보다는 신재영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컸죠. 신재영 감독님의 예전 작품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만드는지 궁금했거든요. 하하. 100% 감독님을 믿고 선택했고, 독특한 새로운 소재의 영화라 결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수철이란 인물이 재미도 있었고요."
스산한 가을에 찾아오는 공포. '맨홀'(신재영 감독, 8일 개봉)에서 사람들을 납치해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맨홀 속의 악당 수철로 분한 정경호의 모습이 새롭다. 영화 '거북이 달린다'의 모습이 겹칠 법도 하지만 당시 탈옥수 송기태가 '도망자'였다면 '맨홀'의 수철은 '살인마'다.

살인마 같은 격렬한 악역은 남자 배우들이 꼭 한 번은 해 보고 싶어하는 회심의 캐릭터. 실제로 한국영화계에는 일명 살인마 캐릭터 계보가 있다. 수철은 그들과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수철을 연쇄 살인마로 다가서기 보다는, 왜 수철이란 인물이 그럴 수 밖에 없는지에 집중했어요. 수철이란 인물이 사실 주변에는 없는 사람이잖아요. 없는 인물을 표현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왜 맨홀에 사는지, 왜 납치를 하는지 제가 먼저 설득돼야 했어요. 그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기도 했고요. 이 세상에 없는 인물을 만들다보니 전사를 만들었죠. 많이 편집됐지만 수철의 과거 이야기가 원래 시나리오에는 다 있었어요. 수철이 그런 짓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과정, 왜 살인을 저지르냐를 관객들에게 알려주는 살인마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절대적으로 악한 놈'과는 구분이 된 것 같아요."
살인마 캐릭터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영화 '이웃사람'에서 배우 김성균이 김새론이 부서지도록 연약해보여 그에게 물리적 힘을 쓰는 장면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두 영화는 '김새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없이 여리여리해 보이는 김새론은 두 영화에서 모두 피해자다. 특히 '맨홀'에서는 청각장애인이라는 점까지 더했다.
김성균이 김새론에게 가졌던 마음을 비슷하게 갖지 않았냐고 묻자 정경호는 우선 웃은 뒤 "편했던 게..저희가 다 멸치여서요. 제가 좀 연약한 상이잖아요"라는 대답을 들려줬다. 김새론과 또 다른 주인공 정유미, 그리고 자신이 모두 몸이 외소하고, 그렇기에 자신이 김새론에게 특별히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는 재치있는 말이었다.
"제가 누굴 막 다치게 할 정도로 힘센 편이 아니라서요. 하하. 새론이도 오랫동안 봐 온 친구고요. 새론이는 그 나이에 그런 연기를 하는 게 정말 놀랍죠. 어떻게 그런 감성을 가질 수 있는지. 되게 부럽기도 하고 대견스럽고 멋있기도 하고 그래요. 새론이 영화는 정말 다 봤거든요."
정경호 특유의 착해보이는 인상과 특히 맑은 눈이 살인마 캐릭터와 마찰을 내며 오묘한 매력을 낸다. 꿈에서라도 만나기 싫을 악당이지만, 어딘가 측은지심이 드는 것이 사실. 감독이 원한 정경호 캐스팅의 목표가 성공한 셈이다.
실제로 정경호는 "수철은 사연이 있는 인물이다. 연민을 갖게 만들면서도, 어느 장면에서는 독한 모습으로 선을 잘 지켜달라고 감독님이 주문하셨다"라고 전했다.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기자간담회에서도 언급했던 욕조 신을 꼽았다. 욕조 안에서 둔기로 배우 김빈우를 내리치는 장면인데, 영화 속에서는 짧게 나왔지만 굉장히 긴 테이크였다고. "너무 기분이 안 좋아서 두 번은 못 하겠더라고요. 연기 하기 싫다가아니라 못하겠다였어요. 그런 기분은 정말 처음이였어요"라며 다시한 번 몸서리를 쳤다.
살인마 캐릭터 이전에도 다양한 작품 속 다채로운 캐릭터를 연기해 온 그다. 전작 '롤러코스터'에서는 이른바 '병맛 코미디'로 새로운 모습을 발견케 했다. 개인적으로는 우디 앨런의 영화나 멜로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는 '얌전한 것'보다는 솔직히 '폭발적인 것'이 당긴다고 털어놓기도.
자신이 필모그래피에서 대표작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이에 그는 "아직 아니"라면서 담담하고 힘 있게 대답했다.
"아직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잘 된거라고도 생각하고요. 지금 내 위치가 좋아요. '빵' 터진 것도 아니고, 그렇기에 아직까지 많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감사하고요.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어느 순 간 배우로서 다른 표현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나하나 차분히 경험을 쌓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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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이 기자 ouxou@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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