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할 승률로 올라가기 전까지 선수들을 마주하러 가지 않겠다.” “LG는 3, 4위 전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장은 길이 멀다. 하나하나 계단 올라가는 기분으로 하겠다.”
LG 트윈스 양상문 감독이 지난 5월 13일 취임식 당시 공약들을 모두 실천했다. 취임식으로부터 약 5달이 지난 현재. 양 감독의 이야기들이 소름끼치도록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중이다. 간접적으로 내걸었던 ‘5할 승률 복귀’도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대기록 달성으로 이룩했다. LG가 지난 9일 잠실 KIA전서 또 다시 대역전승에 성공, 4연승과 함께 시즌 전적 61승 61패 3무로 4위 확정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사실 아무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지난 6월 7일 LG가 17승 33패 1무로 5할 승률 ‘-16’까지 떨어졌을 때는, 5할 승률 복귀는 ‘불가능’으로 보였다. 해설위원을 하면서 선수들을 파악했다고 해도, 스프링캠프조차 없이 팀을 올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양 감독은 취임식에서 “모든 분들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쉽지 않다고 하시는데, 한 번 길을 찾아보겠다”고 했는데, 리빌딩의 틀만 마련해도 성공으로 보였다. 실제로 LG 백순길 단장은 7월까지만 해도 “현실적인 우리 목표는 6위 정도다”고 밝혔다.

그런데 돌아보면 모든 게 양 감독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 감독 부임과 동시에 투수진과 포수진을 정비했고, 불펜 안정을 꾀했으며, 매일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도 미래를 향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밀고 나갈 부분은 강하게 밀고 가되, 안 되는 부분은 빠르게 바꾸면서 시즌 마지막 날을 응시했다. 천리안을 갖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갔다.
LG의 최대 강점인 불펜진만 봐도 운영 면에서 양 감독의 혜안을 느낄 수 있다. 양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불펜투수들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했다. 감독 데뷔전인 5월 13일 잠실 롯데전부터 빈틈없는 투수교체로 경기 끝까지 리드를 지켰다. 이전까지 LG 불펜투수들은 자신이 나갈 타이밍을 모르고 우왕좌왕했었다. 하지만 양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는 불펜 투수들 스스로 등판할 시기를 알고 몸을 푼다.
투수조 조장이자 마무리투수 봉중근은 “불펜투수에게 있어 등판 시점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다. 감독님이 오시고 나서 우리 불펜투수들이 편해졌다. 각자 언제 나갈지 알고 있고, 미리 이미지트레이닝을 등을 하면서 상대할 타자들을 잡을 준비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LG는 2013시즌 리그 최강 불펜진의 위용을 다시 드러냈다. 그것도 필승조 몇 명에 의존하는 게 아닌, 불펜진 전원이 필승조가 되어 상대 타선을 압도했다.
무엇보다 양 감독은 양질의 불펜진을 구축했음에도 혹사를 차단했다. 9일 기준 리그 전체 불펜투수들의 이닝수를 살펴보면, LG 선수 중 67이닝을 소화한 유원상 홀로 10위 안에 10위로 걸쳐있다. 불펜 투수들의 투구수와 이닝수는 물론, 불펜에서 몸을 풀 때 몇 개의 공을 던졌는 지까지 세세하게 기록하며 불펜진을 운용했다. 등판 타이밍이 맞지 않아 불펜에서 세 번 몸을 푼 투수는 그날 경기에 투입하지 않는 규칙도 만들었다.
사실 때로는 답답해 보이기도 했다. 1, 2점차 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감하게 이동현이나 봉중근을 투입하면 역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발투수가 고전할 때면, 선발투수를 서둘러 내리고 양질의 불펜진을 풀로 가동시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양 감독은 절대 무리하지 않았다. 팀이 4위 경쟁권에 들어갔음에도, 자신이 세운 규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리고 아시안게임 브레이크가 끝나자 봉인을 풀었다.
LG의 불펜운용은 지난 3일부터 확연히 바뀌었다. 애초에 양 감독은 4위 싸움 승자가 아시안게임 이후에 가려질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2주 이상의 휴식기를 통해 투수들의 컨디션을 조절한 후 승부수를 던졌다. 3일 잠실 넥센전에서 1선발 에이스 코리 리오단을 5회를 앞두고 바꿨다. 이렇게 LG는 한 박자 빠른 불펜 운용으로 지옥의 5연전을 4승 1패로 돌파했다. 6점차를 뒤집은 지난 9일 잠실 KIA전 또한, 선발투수가 2이닝 채우지 못했으나 불펜투수 7명을 투입해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이날 경기 후 양 감독은 “이전까지 불펜진이 무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빠르게 불펜진을 가동해도 괜찮다고 봤다. 그동안 아껴둔 효과를 본 것 같다”고 전했다.
양 감독의 천리안은 불펜 운용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미완의 대기였던 이병규(7번)에게 4번 타자 직함을 줬고, 이병규는 남은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올 시즌 성적 3할4리 14홈런 81타점 OPS .949로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타자 중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논란 속에서 임정우를 다섯 번째 선발투수로 밀고 갔는데, 임정우는 최근 롱맨으로 진가를 발휘 중이다. 불펜 등판시 평균자책점 1.59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9일 잠실 KIA전에서 3⅔이닝 무실점을 기록, 타오르던 KIA 타선에 찬물을 끼얹으며 경기 흐름을 바꿨다.
양 감독은 모든 결과를 선수들, 그리고 팬들에게 돌렸다. 마침내 5할 승률에 도달한 소감을 묻자 “5할 ‘-16’까지 갔을 때는 솔직히 5할 약속이 힘들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선수들을 믿었다. 내가 아직 풀시즌을 이끈 것은 아니지만, 이런 좋은 선수들과 함께 해 영광이다. 선수들 덕분에 LG가 강해졌다. 아울러 팬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고 있어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 아직 LG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4위 확정까지 매직넘버 ‘3’이 남았고, 포스트시즌서도 보여줄 것들이 많다. 양 감독의 진짜 드라마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LG가 새로운 가을의 전설을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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