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은 프로야구 전지훈련지로 몇 가지 장점을 가진 곳이다. 일단 한국과 시차가 1시간 밖에 되지 않고, 이동하는 데 한국에서부터 비행기로 4시간이면 되기 때문에 시차적응에 큰 문제가 없다. 또한 전지훈련 기간인 1~2월 낮기온도 30도에 육박하기 때문에 일찍 몸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때문에 많은 구단들은 1월 재활캠프를 사이판에 차린다. 또한 몇몇 선수들도 개인적으로 겨울에 사이판을 찾아 몸을 만든다.
그렇지만 단점도 적지 않다. 일단 사이판은 훈련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훈련용 야구장도 두 군데밖에 없고, 그나마 한 곳은 정비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2013년 롯데와 LG가 사이판을 찾았는데, 미리 사이판에 파견된 LG 구단직원은 구장에 돌을 골라내고 흙을 갈아엎는 수고를 했다. 또한 그 시기는 우기라서 비가 많이 오면 대책이 없다. 실내 훈련시설도 호텔에 있는 기구 몇 개가 전부다.
롯데는 작년과 올해 사이판에서 좋지 않은 일을 계속해서 겪었다. 작년에는 이용훈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산길을 달리다가 발목부상을 입고 조기 귀국했다. 이후 이용훈은 올해까지 1군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투수 스캇 리치몬드도 훈련합류 첫 날 무릎부상을 입고 퇴출됐다. 롯데는 올해 1차 전지훈련으로 사이판보다 애리조나를 가고 싶었지만 이미 사이판과 계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고참투수 몇 명만 사이판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올해는 날씨가 문제였다. 우기가 겹쳐서 투수들이 야외에서 훈련한 날짜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송승준, 김사율, 이정민, 김승회, 최대성, 정대현, 이용훈, 김성배, 강영식, 이명우, 장원준 등 주축투수들은 2월 10일까지 몸을 만들고 가고시마에 건너 갈 예정이었지만 계속해서 비가 온다는 예보에 결국 1월 말 조기 철수했다.
야구에는 그 해 성적은 겨울동안 정해진다는 말이 있다. 어떻게 겨울을 보내느냐에 따라 성적이 갈리는 것이고, 시즌 중에는 성적을 좌우할 수 있는 변수가 적다는 의미다. 사이판 조는 롯데 투수진의 핵심 선수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몸을 달궈서 실전훈련에 맞춰야 할 사이판에서 제대로 훈련조차 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시즌 중까지 계속됐다.
한 투수는 “사이판이 원래 날이 더워서 나이가 좀 있는 선수들이 몸을 만들기 좋다. 그런데 올해는 비 때문에 제대로 훈련도 못 해서 가고시마까지 몸이 제대로 안 올라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시즌 중에도 준비가 부족했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사이판을 다녀 온 주축투수 가운데 상당수는 올 시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시즌 개막 전 롯데 마운드는 9개 구단 가운데 상위권으로 평가 받았다.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롯데 투수진은 널뛰기가 심했다. 올해 롯데의 4강 탈락 원인 가운데 하나는 마운드 붕괴다. 크리스 옥스프링은 건재했고 장원준 역시 복귀 후 첫 시즌임을 감안하면 선전했지만 송승준과 쉐인 유먼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불펜에서도 정대현, 이명우, 김성배, 김사율 등 중심을 잡아줘야 할 선수들도 흔들렸다.
이들의 부진이 사이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롯데가 올해 첫 단추를 사이판에서 잘못 끼웠다는 점이다. 이를 절감한 롯데는 내년부터 사이판이 아닌 미국 현지에서 1차 전지훈련을 소화할 예정이다. 아직 정규시즌은 남았지만 롯데의 2014 시즌은 이제 마무리 단계다. 내년 재도약을 위해서는 올 겨울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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