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석 "'꽃청춘'은 '응사' 후 첫 휴가, 진짜 여행 같았죠" [인터뷰]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4.10.12 11: 15

배우 유연석은 느릿느릿,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내뱉었다. “10년 정도는 그냥 꿈만 바라보고 가야겠다고 했다”고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에선 한 번 결심한 것은 웬만해선 잘 바꾸지 않는 심지가 느껴졌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영화 ‘제보자’(임순례 감독) 속 제보자 심민호 역은 유연석에게 참 잘 어울리는 역할이다. 외부의 압박, 혹은 선한 뜻이 매도되는 상황 속에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심민호의 고집스러운 얼굴이 유연석과 자연스럽게 겹쳤다.
‘제보자’에서 심민호는 아픈 딸의 치료를 걱정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 누구의 지지 없이 자신의 상관이자, 전 국민적 신임을 받고 있는 과학자의 거짓을 폭로한다. 유연석을 스타로 만들어 준 tvN ‘응답하라 1994’ 때와는 또 다른 캐릭터다. 지난 캐릭터와 달랐기 때문에 이번 역할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유연석은 이번 맡은 역할에서 많은 신경이 쓰였던 부분이 ‘아버지 역’을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로 나오는 것에 대해서 걱정이 됐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그걸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감독님이 ‘그거(아버지 역)보다 제보자로서 어떤 고민들과 갈등들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고민해라, 심리적인 갈등들에 집중하다보면 믿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아픈 딸아이를 가진 부모의 심정은 무게감이 쉽지 않을 거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만 참고를 하고 가면 크게 어색하지 않을 거다’라고, 그렇게 충고를 해주셨던 것 같아요.”

왜 임순례 감독은 제보자 역할에 유연석을 택했을까. 그 자신에게 물었더니 겸손하지만, 진솔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를 왜 하셨을까요? (웃음) 여러 가지 것들이 있겠지만, 제보자라는 역할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셨고, 제 또래 연기자들 중에서 여러 가지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우선 제 그 전 작품들을 좋게 보신 것 같고, 이번 작품에서도 잘 하지 않을까 믿어주신 거였던 거 같습니다.”
돌아보면, 유연석은 늘 자신이 맡은 역할에서 99% 이상을 소화했다.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 매력을 보여주기 전까지 대중에게 익숙했던 것은 영화 ‘늑대소년’이나 ‘건축학개론’ 속 악역들이었고, 이후엔 ‘응답하라 1994’ 속 다정한 서울 남자 ‘칠봉이’였다. 특히 ‘응답하라 1994’를 통한 이미지 변신은 신의 한 수였다. ‘응답하라 1994’ 이후 많은 작품을 찍고 있다는 말에 그는 “그 전에는 하고 싶어도 못 한 작품이 너무 많았다”며 특유의 돌아가지 않는 우직한 화법으로 자신의 심정을 전했다.
“일부러 (작품을) 안 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그 전에는 하고 싶어도 못한 작품이 너무 많았거든요. 이런 좋은 기회들이 찾아오고 좋은 캐릭터의 기회를 주시고 하는데 시간이 된다면 되는대로 많은 캐릭터를 만나고 싶었어요. 사실 작품을 일부러 많이 했다고는 생각을 안했는데 하고 보니까 그렇게 돼 있더라고요. 일부러 공백을 갖고 그럴 생각은 없고요(웃음), 앞으로도 그렇습니다. 물론 제가 하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역할에 기회가 안 닿으면 쉴 수도 있겠지만요.”
그가 겪은 오랜 무명 기간은 ‘꽃보다 청춘’ 속 인터뷰를 통해서도 방송이 된 바 있다. 그는 이 시간들에 대해 "그 때 그 시절이 없었으면 지금이 없다”면서 “금전적인 걸 바라지 않고 했던 수많은 작품들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조금 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좋아하는 연기를 원 없이 해볼 수 있는 오늘이 왔다. 이는 계속되는 스케줄 강행군에도 유연석이 버텨낼 수 있는 이유다.
“정말 ‘응답하라 1994’를 끝내고 몸은 피곤한데요. 힘들지 않으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까,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았어요. 지금 정신적으로는 거의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온 것 같아요. 여러 캐릭터를 고민하다 보니까요. 그렇지만 이걸 다 해내면 그만큼, 그 이상의 보람이 올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그걸 기대하면서 버텼어요.”
이제 막 연기자로서 주목을 받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어 행복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고민도 더 깊어졌다. ‘제보자’를 찍을 때도 고민이 많았다. 그는 자신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온 선배 박해일에게 들었던 충고가 유독 마음에 와 닿았다고 했다.
“박해일 선배님은 정말 팬으로 좋아했던 배우에요. 그런 분과 호흡하고 대사를 주고받고, 눈빛을 주고받고…. 한 신 한 신 공유하면서 한 작품을 그려나가는 점이 참 영광이었어요. 그리고 ‘제보자’는 제가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게 되면서 그 다음으로 선택한 작품이라 고민이 되는 부분이 많고, 너무 바빠지고 몸도 힘들고 심리적으로도 힘들었는데 선배님이 충고를 해주셨어요. 충분히 즐기고 받아들이라고요. 사실 ‘힘내라’ 같이 보편적인 충고보다 그게 더 다가왔어요. 이렇게 사랑을 많이 받을 때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 그걸 받아들이라고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러고 보면 유연석과 박해일은 전혀 다른 외모에도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느낌이 있다. 어떤 역할에도 튀는 느낌이나 위화감 없이 녹아 들어갈 수 있는 도화지 같은 이미지와 연기력이 두 사람을 데칼코마니처럼 이어준다. 사실 이런 도화지 같은 이미지는 무명 시절, 유연석에게는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무명 때는 콤플렉스였던 것 같아요.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야 빨리 사람들에게 저를 각인시킬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제 콤플렉스였어요. 나도 뭔가, 전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가야하나? 고민들도 많았는데 다양한 캐릭터를 하다보니까 이제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내가 보이는 대로 하면 되고 그것에 대한 흥미를 느낀 거 같아요. 저란 배우의 장점으로 생각하고 가는 게 저로서는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동안 유연석은 충무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젊은 남자 배우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길다고 하면 길다고 말할 수 있는 10년. 2003년 ‘올드보이’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10년간의 시간 동안 유연석은 배우의 길어왔다. 불안할 수밖에 없는 시간을 버텨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역시나 꿈이었다. 
“꿈이 좀 확실했어요. 다른 쪽으로는 꿈을 꿔본 적도 없고요. 보통 친구들은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원하는지 잘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수능 세대들은 성적에 맞춰 학교에 진학하고 하다 보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고 살 때가 많은데 (하지만 저는)이 일을 좋아하고 꿈을 이뤄야겠다는 확신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것도 일련의 ‘과정이다’하고 받아들여졌어요. 처음부터 10년 정도는 그냥 한 번 꿈만 바라보고 가야겠다는 마음가짐도 있었고요. 그게 제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꽃보다 청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꽃보다 청춘’에서 유연석은 제작진의 표현처럼 전 시리즈의 짐꾼들인 이서진-이승기를 합쳐 놓은 듯한 매력을 발산했다. 어미새처럼 동료들을 돌봤고, 숙소를 정하고 여행지를 결정하는데도 늘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 갑자기 떠난 여행이 홀가분하지 않았는지를 묻자 "그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게 제 첫 휴가였어요. ‘응사’ 이후에 첫 휴가요. 작년에 시작한 게 8월쯤이었어요. 그리고 라오스에는 7월 7일 날 갔으니까 거의 11개월 만에 처음으로 가진 휴가였죠. 비록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래서 더 휴가라고 느끼고 여행처럼 느끼려고 했던 거 같아요.”
‘꽃보다 청춘’을 다녀온 후 바로-손호준과는 더 친밀한 관계가 됐다. 유독 노출이 많았던 터라 “은근슬쩍 몸매 자랑을 한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최대한 안 하려고 노력했다”고 대답해 웃음을 주기도했다.
“그게 그렇게 다 나갈 줄 몰랐어요. 팬티 바람으로 한 것도 나갔더라고요. 관찰 예능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의식 안 하고 여행을 하려고 하다보니까, 또 더운 나라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웃음) 사실 몸매를 드러내고 싶다고 느낄 만큼의 컨디션은 아니었어요. 운동을 계속 드라마 할 때처럼 몸을 만들어 논 상태가 아니었거든요.”
방송 이후 바쁜 시간 속에서도 대부분의 에피소드를 '본방사수'했다는 유연석은 "첫 방송 때도 멤버들과 함께 봤다"며 방송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 때 생각들도 나고 다시 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을 느꼈다고. 그럴만도 했다. '꽃보다 청춘'은 나영석 PD가 만든 '꽃보다' 어떤 시리즈보다 활기가 넘쳤던 프로그램이었다. 청춘들 특유의 유쾌함이 시리즈의 완결판으로서 역대급의 재미를 끌어냈다는 평.
방송을 통해 짧은 휴가를 다녀온 유연석은 앞으로도 개봉할 영화가 줄줄이다. 여전히 바쁜 스케줄에 힘들겠지만, 선배 박해일의 말처럼, 또 꿈을 갖고 왔던 그의 말처럼 잘 해내겠지 싶었다.
“계획 같은 걸 써 붙여 놓고, 만들어 놓고 그러진 않아요. 그냥 스스로 되새겨요. 요즘의 꿈은 ‘제보자’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웃음) 가까운 꿈은…. 배우로서의 큰 꿈은 ‘꽃할배’ 분들처럼 오랜 세월동안 연기자로서 활동하는 거예요. 지금의 연세에도 열정을 놓지 않고, 또 다른 꿈에 도전하고 계신 분들처럼 그렇게 되고 싶다는 꿈을 계속 꿔요.”
eujenej@osen.co.kr
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