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속담 가운데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류중일 삼성 라이온즈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오승환(투수)과 배영섭(외야수)의 전력 이탈을 우려했다.
잘 알려진대로 오승환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소방수. '난공불락'이라는 표현이 딱이다. 오승환은 2005년 데뷔 후 다섯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배영섭은 2011년부터 삼성의 1번 타자로 활약하며 공격의 첨병 역할을 톡톡해 해냈다. 류중일 감독은 올 시즌 전망에 관한 물음마다 "이들의 공백을 메우는 게 관건"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과연 이들의 공백은 어느 정도였을까.
삼성은 올 시즌 안지만에게 뒷문 단속을 맡길 계획이었다. 하지만 안지만의 역할을 맡을 인물이 마땅치 않았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메이저리그 재진입을 노리던 임창용이 7년 만의 전격 복귀를 결정했다. 그야말로 천군만마. '돌(오승환)이 빠진 자리에 뱀(임창용)이 똬리를 틀었다'고 했던가. 오승환 대신 임창용이 소방수 역할을 맡으며 삼성의 뒷문 불안에 대한 걱정은 말끔히 사라지는 듯 했다.

돌이켜 보면 만족보다 아쉬움에 가깝다. 임창용은 14일 현재 30세이브를 거뒀지만 평균 자책점이 5.89로 높고 9차례 블론 세이브를 범했다. 시즌 도중 구위 재조정을 위해 1군 엔트리에서 빠지기도 했다. 반면 일본 무대에 진출한 오승환은 한신의 수호신으로 맹위를 떨치며 센트럴리그 구원 1위에 등극했다. 다시 말해 오승환의 공백을 말끔히 지웠다고 볼 수는 없다.
임창용 또한 결코 만족하지 않을 터. 과거 '창용불패'의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특급 소방수의 위력투를 선보인다면 정규 시즌의 아쉬움을 만회할 수 있다. 그리고 삼성 투수조의 '맏형' 임창용이 흔들리면 마운드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삼성의 한국시리즈 4연패 달성과 선수 개인의 명예를 위해 무조건 잘 던지는 게 정답.

배영섭의 공백은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야마이코 나바로(내야수)와 박해민(외야수)의 맹활약 덕분이다. 삼성은 올 시즌 정형식과 박한이를 1번 타자로 기용했으나 기대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고심 끝에 나바로 1번 카드를 꺼냈다. 결과는 대성공. 14일까지 123경기에 출장해 타율 3할9리(495타수 153안타) 30홈런 97타점 116득점 25도루로 만점 활약을 뽐냈다. 영입 당시 우려의 시선이 지배적이었으나 어느덧 복덩이가 됐다.
박해민의 활약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에 가깝다. 전훈 캠프 명단에도 들지 못했던 그는 치열한 경쟁 끝에 배영섭이 빠진 외야 한 자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14일 현재 성적은 타율 2할9푼1리(302타수 88안타) 1홈런 31타점 63득점 35도루. 1군 승격 초반에는 대수비 또는 대주자 요원이었으나 이젠 삼성 타선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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