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초창기까지 줄곧 빅맨을 봐왔습니다.”
다음 시즌부터 한국프로농구(KBL)는 2,4쿼터에 외국선수 2명을 동시에 출전시킨다. 김영기 KBL 총재는 “이제 우리도 장신자들의 기량이 많이 좋아졌다. 지금 시대에 맥도웰이 다시 와도 행세를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연 그럴까.
서울 삼성은 15일 오후 7시 안양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된 2014-2015시즌 KCC 프로농구 1라운드에서 홈팀 안양 KGC인삼공사를 연장 접전 끝에 92-90으로 잡고 시즌 첫 승(2패)을 신고했다. 이상민 감독은 프로감독으로서 애타게 기다리던 첫 승을 기록했다. 김영기 총재 기준으로 만족도 92%의 수준 높은 경기였다.

승부의 물줄기를 가른 선수는 삼성의 빅맨 김명훈(29, 삼성)이었다. 고비 때마다 3점슛 4방을 쏟아낸 그는 연장전에서도 다시 한 번 정확한 슈팅으로 림을 흔들었다. 맹추격을 벌였던 KGC도 김명훈의 한 방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경기 후 인터뷰실에 들어선 김명훈은 영 어색해보였다. 2009년 프로 데뷔 후 공식 수훈선수 인터뷰가 처음이었다. 김명훈은 “어렸을 때부터 줄곧 빅맨을 봐와서...인터뷰장에 처음 와본다”며 말문을 열었다.
경희대시절 김명훈은 골밑에서 우직한 플레이가 돋보이는 센터였다. 탄력이 뛰어난 김민수와 짝을 이뤄 경희대의 전성기를 열었다. 당시 국가대표 박찬희와 호흡을 맞춘 고공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프로에 와서 김명훈은 늘 보조자였다. 득점원들의 스크린을 서주고, 몸싸움을 하는 것이 주 역할이었다. 본인이 주가 되어 득점에 가담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랬던 김명훈의 진가를 이상민 감독이 알아봤다. 섬세한 슛 터치를 보고 비시즌 3점슛을 연습시켰다. “궂은일을 하되 찬스가 나면 무조건 자신 있게 쏴라”는 주문은 김명훈을 춤추게 했다. 김명훈은 야간에도 체육관에 나와 부지런히 슛을 던졌다. 그 결과 임동섭과 차재영의 부상공백을 완벽히 메운 포워드 변신에 성공했다.
김명훈의 활약 뒤에는 ‘프로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그는 아마추어시절 200cm의 장신센터였지만 외국선수가 버틴 프로 골밑에서 경쟁력이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힘겹게 연습한 것이 바로 3점슛이었다. 다른 아마추어 선수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프로에서 뛰려면 자신의 색깔을 버리고 감독의 주문을 소화해야 한다. 만약 외국선수가 동시에 2명이 뛴다면 어땠을까. 김명훈은 출전시간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일찌감치 기억에서 지워졌을 것이다.
김명훈은 “우리 팀에 포워드가 많이 없다. 나머지 선수들이 부상이다. 감독님과 코치님이 내게 궂은 일과 수비, 리바운드를 먼저 강조하신다. 찬스가 나면 자신 있게 던지라고 하셨다. 코트에 들어가서 궂은일을 열심히 하고 과감하게 쏘려고 했다”며 활약의 비결을 밝혔다.
프로농구가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김명훈처럼 열심히 하는 선수가 기회를 얻고 충분한 관심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외국선수 2명이 동시에 뛰는 리그에서 과연 국내선수에게 충분한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 시사점이 많았던 김명훈의 활약이었다. 그의 활약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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