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혜린의 스타라떼] 저항의 아이콘 서태지가 변했다?
16일 0시 공개된 서태지 9집 '콰이어트 나이트'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은 곡을 주도하는 화자로서의 서태지의 포지션에 미묘한 변화를 감지케 했다.
"됐어, 그런 가르침은 됐어('교실이데아')".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시대유감')"라고 노래하던 그가 '세상이 원래 이런 걸 몰랐니?'라고 냉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말로윈'의 화자는 산타 혹은 산타 격의 지위를 갖고 있는 어른이다. 화자는 노래에서 "울지마 아이야 애초부터 네 몫은 없었어 아직 산타를 믿니?", "이젠 내가 너의 편이 되어 줄게 (꿈깨)"라며 현실에 저항하는 이들 앞에 오히려 냉소로 일관한다.
기성 세대가 된 자신의 위치도 드러낸다. "나 역시 몸만 커진 채 산타가 되었어. 이것 봐 이젠 내 뱃살도 기름지지"가 대표적인 부분. 또 "난 안락함의 Slave But 달콤한 케익"이라고 덧붙인다. 안락함에 익숙해지고 현실에 무뎌지며 기름진 뱃살을 늘려가는 기성세대를 연상케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풍자도 빼놓진 않는다. 달콤하게 '요람부터 무덤까지'를 책임지는 듯하지만 "밤새 고민한 새롭게 만든 정책 어때. 겁도 주고 선물도 줄게"라고 기득권층의 아이러니한 행태를 비꼰다. 저항의 역사를 지닌 자신에 대한 묘사도 나타난다. 노래는 "난 불순한 스펙이래 리스트에서 제외"라며 마무리된다.
20대에서 40대가 된 만큼 서태지가 저항의 주체에서 기성세대로 화자를 옮긴 셈인데, 여기에 부조리함을 부각시키며 특유의 현실 세계 감수성은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산타가 곧 오니까 뭐든 조심해보는 게 좋다는 내용은 최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찰 이슈와 맞물리며 '빅브라더 시대'의 주제곡 같이 들리기도 한다.
화법이 직설에서 은유와 상징으로 옮겨간 셈이기도 한데, 그러고보면 선공개곡 '소격동' 역시 향수와 그리움의 외피를 싼 1980년대 고발 곡일지도 모른다.
물론 '크리스말로윈'이 먼저 선사하는 충격은 사운드다. 일레트로닉에 일명 '뽕짝' 느낌의 리듬을 섞어 기묘한 음악을 탄생시켜놨다. 가사는 여러차례 들어봐야 '겨우' 들린다. 하지만 꽁꽁 숨겨놓은 서태지의 이 '냉소'야말로 이 곡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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