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유머와 따뜻한 이야기의 조합. 장진표 블랙코미디는 살아있다.
장진 감독이 연출한 영화 '우리는 형제입니다'가 15일 언론배급시사회를 갖고 베일을 벗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30년 동안 헤어졌다 극적으로 상봉한 두 형제가 30분 만에 사라진 엄마를 찾기 위해 전국을 누비는 일종의 로드무비.

극적 상봉과 동시에 가족을 잃어버리는 기가 막히는 상황의 주인공 상연과 하연은 각각 조진웅과 김성균이 연기했다. 충무로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는 이 배우들은 각기 다른 개성으로 부딪히며 반대로 조화를 이룬다. 외모 뿐 아니라 성격, 직업 등이 너무 다른 형제는 그 대비 자체만으로도 웃음을 준다. 형은 목사이고, 동생은 무속인이라는 설정 등이다.
102분간의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서 이야기는 시간을 허투루 낭비함 없이 '꽉 차게' 흘러간다. 점차 그 수를 늘려가는 등장인물과 끊임없이 발생하는 에피소드가 산만함 없이 적절한 코미디와 상황으로 표현되는 것을 장진의 영화에서 이미 많이 봐 왔다. 여기에 뼈 있는 유머와 따뜻한 울림의 공존이다.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많은 부분에서 장진표 초기작을 생각나게 한다. '기막힌 사내들', '킬러들의 수다'에서 봤던 예측 불허한 상황과 인물들의 관계, 말장난 같으면서도 기막힌 언어 유희, 그리고 은유적으로 던지는 풍자적 메시지. 누가 봐도 '장진이 쓰고 만들었다'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오래 떨어져 있어 서먹한 두 형제가 만나 어머니를 찾아가는 여정은 흥미롭다. 너무 달라 시종일간 마찰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재미가 있는데, 그 과정에서 만나는 이들이 장진 감독의 시그니처가 담겨있는 캐릭터들이다.

장진 감독의 전작 '하이힐'에서 반전 있는 오정세의 오른팔로 등장해 존재감을 드러냈던 배우 조복래는 숫기 없는 A형 소매치기로 분해 웃음을 터뜨린다. 김민교는 성격이 불 같은 렉터카 운전자를 맡아 전매특허 동공 연기를 선보이고, 맥아더 장군을 모시지만, 신과 영어로 대화하냐는 질문에 '더빙'이 있다는 엉뚱한 말을 하는 엉뚱황당 무속인 친구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많은 유머 코드를 관통하는 정서는 어딘지 모르게 슬프다. 한없이 선량해 보이는 목사 상연의 몸에 있는 그늘을 발견하는 순간, 관객들은 의심에 휩싸이고 동생의 오해는 쌓여가지만 '가족의 비밀'은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무작정 아무 버스나 올라타고 전국 유람을 하는 치매 어머니는 툭툭 웃음을 주나 시종일관 아리다. 이런 와중 배우 김영애와 이한위의 경비실 라면신 같은 장면에서 너무 따뜻해 눈물이 난다.
장진의 초기작을 떠올리게 하는 이유는 사회 풍자와 해학이 담긴 블랙 유머 때문이다. 부의를 나눠주는 할머니란 설정 자체가 일면 상징적이다. 정치인과 언론의 과대 포장과 현실 왜곡이 분노의 다른 얼굴인 쓴웃음을 안긴다.
'감동적이다'라는 평에 장진 감독은 VIP 시사회에서 "우리 영화는 코미디다"라고 정체성을 확실히했다. 전형적인 장진식 블랙코미디를 느끼게 하기 충분해 장진 감독의 초기작 마니아들을 만족시키면서도, 스산한 날씨에 유쾌하게 볼 수 있는 휴먼드라마를 만나길 바라는 관객들에게 선물같은 영화다. 12세 관람가.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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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형제입니다' 포스터,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