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굳이 꼽자면 스스로 조급해지지 않으려했던 것. 꾸준히 참아왔던 게 아닐까 싶다.”
LG 트윈스가 기적에 마침표를 찍었다. LG는 17일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인 사직 롯데전에서 5-8로 패했으나, SK가 넥센에 2-7로 지면서 SK를 따돌리고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이로써 LG는 오는 18일 마산행 버스에 오른다.
양상문 감독의 ‘독한 야구’가 기적을 낳았다. 양 감독은 지난 5월 13일 취임식에서 ‘독한 야구’를 다짐했고, 이후 LG는 실제로 독하게 한 걸음씩 전진했다. 연승행진이 길지는 않았지만, 진 경기보다 이긴 경기가 많아지면서 순위를 높였다.

반전의 시작은 불펜진이었다. 불펜투수들이 각자의 역할을 인지하면서, 지난해보다 강한 불펜진이 탄생했다. 불펜진 가용폭을 넓혀 불펜투수 전원이 필승조 역할을 했다. 이후 선발진 에이스 3인방이 모두 안정감을 찾았고, 타선도 단단하게 뭉쳤다. 어느 팀과 붙어도 두렵지 않은 투타 밸런스를 갖췄고, 시즌 막바지에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팀이 됐다.
양 감독의 계획이 적중한 결과였다. 해설위원 시절부터 꼼꼼하게 LG를 바라본 양 감독은 빠르게 LG를 파악했다. 부임 후 불과 한 달 만에 1군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양 감독은 취임식부터 정찬헌 윤지웅을 불펜진의 새 바람을 일으킬 투수로 평가했다. 신재웅을 고심 끝에 롱릴리프로 낙점, 지난 2년 동안 선발투수로 활약한 신재웅에게 새 옷을 입혔다. 세 투수에게 맞는 보직을 부여했고, 우직하게 밀고나갔다. 간혹 실점하고 리드를 지키지 못하기도 했으나, 이제 이들 셋이 없는 LG 불펜진은 상상하기 힘들다.
좋은 투수들이 많다고 강한 불펜진이 구축되는 것은 아니다. 불펜진은 구성보다 관리가 중요하다. LG 불펜진이 꾸준할 수 있었던 것은 양 감독의 인내를 바탕으로 관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양 감독은 시즌 내내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불펜 운용을 했다. 투수들이 불펜에서 몸을 풀 때도 몇 개의 공을 던졌는지 체크했다. 가령 세 번 이상 불펜에서 몸을 푼 투수는 경기에 투입하지 않았다.
양 감독은 “나 또한 항상 이동현과 봉중근을 투입하고 싶다. 하지만 비록 오늘 패하더라도 시즌을 이기기 위해선 참아야한다. 이미 연투를 했다면 불펜에서 몸도 풀지 못하게 하는 게 맞다. 그래야 괜한 욕심을 부리지 않을 수 있다. 많이 참으면 나중에 결과로 돌아온다고 믿는다”고 독하게 인내하는 게 내일의 승리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양 감독의 인내는 투수진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이병규(7번)를 차세대 LG의 4번 타자로 낙점, 시즌 중반부터 마지막 날까지 4번 타순에 고정시켰다. 잦은 부상으로 풀시즌을 소화하지 못했던 이병규는 양 감독의 믿음과 함께 잠실 최고의 타자가 됐다. 올 시즌 OPS .933(15일 기준)으로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LG·두산 타자 중 가장 높은 수치를 찍었다. 타석에서 부진했던 박경수도 주전 2루수로 낙점, 박경수는 8월부터 공수 모두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양 감독은 인내를 통해 미래도 설계하고 있다. 임정우를 다섯 번째 선발투수로 3개월간 돌렸고, 최승준 채은성 김재민 등 1군이 낯설었던 이들에게 꾸준히 기회를 줬다. 기존 전력에 공백이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어린 선수들을 투입했다. 양 감독은 시즌이 끝나면, 유망주 25명을 추려 일본 고치에서 소수정예 마무리캠프를 계획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양 감독은 누구보다 완벽하게 준비했다. 2005시즌을 마치고 롯데 사령탑에서 물러난 후 더 치열하게 공부하며 다시 지휘봉을 잡을 날을 고대했다. 현장서 멀어지지 않으며 야구와 붙어있었다. 결국 양 감독이 인내한 10년이 ‘독한 야구’를 만들었고, 독한 야구는 LG가 기적을 쓰는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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