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이 정도의 활약을 펼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언제나 조연이었다. 수차례 선수생명 위기와 마주했고, 유니폼을 벗을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역경을 이겨냈고, 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됐다. LG가 주연으로 올라선 3인방의 활약에 힘입어 4위 기적을 달성했다.
포수 최경철(34)은 이전까지 ‘연습용 선수’란 달갑지 않은 별명을 달고 있았다. 2003년 SK 유니폼을 입고 프로선수가 됐지만, 최경철이 빛난 곳은 1군 무대가 아닌, 2군 무대, 혹은 전지훈련이었다. 항상 누구보다 굵은 땀방울을 흘렸음에도 이상하리만치 실전에 약했다. 한 배터리 코치는 최경철을 두고 “연습을 게을리 하거나, 아예 실력이 없다면 아쉽지도 않을 것이다. 실전에서 본 실력에 10%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너무 안쓰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최경철은 10년 동안 팀의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투수였다. 1군 포수가 부상으로 빠지면 1군 호출을 받았다가, 1군 포수가 부상에서 회복되면 바로 2군으로 돌아갔다. 포수가 부족한 팀으로 두 차례 트레이드되기도 했으나 곧바로 반전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지난해 4월말 최경철은 두 번째 팀 넥센에서 세 번째 팀 LG로 트레이드됐고, 주축 포수들이 돌아오자 2군으로 내려갔다. 팀은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가을잔치 무대에 최경철의 자리는 없었다.

결국 땀은 최경철을 배반하지 않았다. 2014년 스프링캠프에서 최경철은 포수진에서 가장 돋보였고, 시즌을 치르며 진가를 발휘했다. 포수진이 줄부상으로 이탈했으나, 홀로 매일 포수마스크를 쓰면서 버텼다. 자주 경기에 나가면서 투수들과 절묘하게 호흡이 맞았고, 타석에서도 적시타가 터져 나왔다. 어느덧 최경철은 LG에서 대체불가 선수, LG의 주전포수로 우뚝 올라섰다.
좌투수 신재웅(32)은 이미 지난 2년 동안 감동 스토리를 만들었다. 2007시즌 후 어깨 부상으로 방출됐던 선수가 인고의 시간을 이겨내며 1군 투수로 돌아왔다. 2012시즌과 2013시즌 후반기부터 LG 선발진에 합류해 이름 석 자를 확실하게 알렸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신재웅은 지난 2년에 만족하지 않았다. 풀타임을 소화하기 위해 밥 먹듯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진화했다. 140km대 초반이었던 구속이 150km에 도달했다. 서른 살이 넘은 투수가 갑자기 구속이 상승하는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강한 체력과 선발 등판을 통해 얻은 이닝 소화능력을 조합, 불펜서 롱릴리프 역할을 완벽히 소화했다.
이렇게 신재웅은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좌완 파이어볼러가 됐고, LG에 승리를 불러왔다. 신재웅이 경기 중후반 2, 3이닝을 소화하면, LG 타자들을 맹타를 휘둘렀고, LG가 승기를 잡곤 했다. 시즌 중반 LG의 대약진은 신재웅이 경기 중반을 확고히 책임지면서 시작됐다. LG 투수조 조장 봉중근은 “투수들 모두 재웅이를 보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 재웅이 만큼 열심히 훈련하면, 우리도 더 나은 투수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웨이트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야수 손주인(31)도 2013시즌보다 놀라운 2014시즌을 만들었다. 2년 전까지 삼성의 백업 내야수였던 손주인은 2013시즌을 앞두고 LG로 트레이드됐고, 무주공산이었던 LG의 2루를 책임졌다. 공수를 겸비한 내야수로 10년 동안 변화가 반복되던 LG 2루의 주인이 됐다. 유격수 오지환과 절묘한 호흡을 자랑하며 리그에서 가장 많은 더블플레이를 만들어냈다.
손주인은 2014시즌에도 굳건히 2루를 지켰다. 그런데 7월초 외국인 3루수 조쉬 벨이 타격 부진으로 퇴출당했고, 두 번째 3루수였던 김용의도 수비서 고전하며 내야진 전체가 붕괴됐다. 신예 백창수까지 3루수 선발 출장했지만, 해답은 아니었다. 결국 LG 코칭스태프는 손주인이 삼성 시절 멀티 내야수였다는 것을 돌아보고, 손주인을 3루수로 이동시켰다. 손주인이 구멍난 핫코너를 메우기 위한 마지막 보루였다.
마지막 대안은 적중했다. 손주인은 3루서도 뛰어난 수비력을 선보였다. 손주인으로 인해 LG 내야진이 다시 안정을 찾았고, 투수들은 한결 편한 마음으로 공을 뿌렸다. 손주인은 지난해 처음으로 풀타임을 소화하며 타석에서 기복을 겪었으나, 올해는 시즌 내내 안타를 때렸다. 불과 2년 전에는 누군가의 대안이었으나, 이제 손주인은 대안이 아닌 붙박이 내야수다.
지난 1월 LG가 새 외국인투수로 코리 리오단(28) 영입하자 대중의 시선은 냉담했다. 2013시즌 마이너리그 트리플A서 평균자책점 6점대를 찍은 투수가 오는 것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경력의 화려한 외국인들이 한국을 노크하는 것과 정반대였다. 빅리그 마운드를 밟아보지 못한 마이너리거의 기대치는 낮을 수밖에 없었다.
리오단은 5월 11일까지 7경기에 선발 등판, 1승 5패 평균자책점 5.15를 기록했다. ‘혹시나’했지만 ‘역시나’였고, 올 시즌 첫 번째로 퇴출당하는 외국인선수가 되는 듯싶었다. 반전은 양상문 감독 취임과 함께 일어났다. 양 감독은 일단 리오단을 1군 엔트리서 제외했고, 원포인트 레슨을 통해 투구폼을 교정했다. 투구시 상체 움직임을 작게 만들어 제구력을 향상시켰다.
이후 리오단은 미운오리서 백조가 됐다. 선발 등판마다 꾸준히 퀄리티스타트를 찍으며 우규민 류제국과 함께 에이스 3인방을 형성했다. 포심과 투심, 그리고 컷 패스트볼로 상대 타자를 압박하고 커브와 체인지업으로 타이밍을 빼앗았다. 한국 타자들을 매일 연구하며 쉽게 범타를 유도해냈다.
양 감독은 “미국에서 마이너리그 투수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분명 재능이 있는데 작은 부분 하나가 안 돼서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 못하는 투수들이 상당수였다”며 이전부터 리오단의 재능을 알아봤음을 밝혔다. 그렇게 리오단은 한국에서 뛰고 있는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들을 제치고 리그 정상급 투수 반열에 올랐다.
drjose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