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때론 청춘에게 아프라고 말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 말이다. 다만 그 고생이 누구의 탓인지, 왜 그렇게 됐는지는 묻지 않는다. 그런 사회구조를 만든 기성세대의 이야기는 쏙 빼버린다. tvN 새 금토드라마 '미생'(극본 정윤정, 연출 김원석)과 SBS 새 주말드라마 '모던 파머'(극본 김기호, 연출 오진석)에도 '아픈' 청춘들이 등장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시리게 한다.
◇ 딱풀이 뭐길래, 음악이 뭐길래
지난 18일 방송된 '미생' 2회에서는 이른바 '딱풀 사건'이 펼쳐진다. 동기 인턴의 실수로 장그래(임시완)가 속한 영업 3팀의 기밀 서류가 로비에서 발견된 것. 하필 전무(이경영)가 이를 발견해 영업 3팀 팀장 오상식(이성민) 과장에게 전달했다. 오 과장은 해당 서류를 다루던 장그래의 잘못이라 생각하고, 그렇지 않아도 낙하산 인사라 못마땅한 장그래에게 "당장 회사에서 나가라"고 소리쳤다. 장그래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아님에도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오리걸음으로 스스로 벌줬다.

'모더 파머'는 한때 잘 나가던 록밴드 엑소 멤버들의 이야기다. 홍대를 주름 잡던 그들이지만, 현재는 그 시절만큼 화려하지 않다.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거나, 가망 없는 공무원 시험에 매달려 있다. 민기(이홍기)만이 음악을 계속하지만, 시골 잔치에 불려다니는 무명가수이며 사채 7,000만원에 쫓기는 루저에 불과하다. 병원장인 아버지 덕에 병원 인턴으로 살아가는 혁(박민우)의 사정은 조금 나은 듯하지만 지루한 일상은 똑같다. 이들이 배추 농사에 뛰어드는 것은 여전히 음악이라는 꿈을 꾸기 때문이다.
◇ 고졸 검정고시와 비정규직 사이
장그래는 사내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출중한 외국어 실력도 자격증도 없는 그가 시험도 없이 인턴으로 입사했기 때문이다. 동료 인턴들은 그를 노골적으로 무시한다. 장그래가 노력의 질과 양을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 동료들은 그를 냉동창고에 버리고 떠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를 말 없이 받아들이는 장그래의 태도다. 그는 분노하기 보다, 침묵한다. 대신 제 아무리 하찮은 일이더라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록밴드의 또 다른 멤버 한철(이시언)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 극심한 복통이 지속되자 어렵게 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그에게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간암 말기라고 말했다. "건강검진만 꼬박꼬박 받았어도 조기치료가 가능했다.그동안 왜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느냐"고 묻는 의사의 말에 한철은 멍한 얼굴로 "비정규직이라서요"라고 답했다. 이처럼 비정규직인 한철은 회사에서 절대적인 을이다. 상사의 차별대우에도 반박하지 못한다. 아파도 눈치를 보며 병원을 가야하고, 접대와 회식에 빠지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 그들은 무엇을 잘못했나
장그래에겐 잘못이 없다. 그가 고졸인 것은, 바둑을 포기한 것은 그의 실력 탓만은 아니다. 집안 사정은 넉넉하지 못했고, 바둑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으며, 결국 아버지까지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자책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당한 대우에 화내거나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기에 장그래는 "우리애가 혼났잖아"라는 오 과장의 말에 감동할 만큼 착하고 순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철은 분통을 터트린다.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살아왔다고,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 뿐이라고.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며, 병원에 제때 오지 못한 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음악이라는 꿈을 쫓았고, 그것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과 타협한 것뿐이었다. 친구들과 농사를 시작하지만 이번에도 어설프다. 실수연발이다. 하지만 희망이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장그래, 민기와 한철을 포함한 엑소의 멤버들은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이들과 닮아 있다. 남들 만큼 뛰어나지 않지만 각자 하나씩 강점을 타고 났다. 장그래에겐 끈기와 근성이, 엑소 멤버들에겐 꿈과 패기가 있다. 그것만 가지고는 경쟁이 치열한 이 시대를 헤쳐나가기에 부족한 것마저 오늘날 2030세대와 비슷하다. 그들을 자꾸만 응원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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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모던파머'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