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진짜 동화책에는 없는 현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10.21 08: 21

[OSEN=박영웅의 Early Bird] 컴백 공연에서 서태지는 '나인티스 아이콘'을 부르기에 앞서 "여러분이 좋아하던 90년대 스타들과 여러분의 인생도 같이 저물어 가고 있다. 한물간 별 볼일 없는 가수가 들려드린다"면서 웃었다. 직접 그의 입에서 진짜 속마음이 나오자 뭔가 애잔했다. 한때 문화대통령이라 불리우던 서태지는 이렇게 스스로를 내려놓았다. 결국 시대는 바뀌었고 그를 둘러싼 거창한 수식어는 옛 말이 됐을지 모른다. 그래도 변함없는 건, 여전히 그가 논란과 관심의 대상이란 점이다.
먼저 음악 얘기부터 하자면, 이번 9집에서 그가 꺼낸 카드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앨범 역시 새롭게 창조한 하나의 세상 안에서 각각의 스토리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자신만의 동화적 상상력을 부여하면서. 또 우리 시대에 던지는 따뜻한 위로와 용기의 메시지를 통해 모두에게 물음표를 던지기도 한다.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은 부드럽게 도발한다. 크리스마스 산타와 할로윈 괴물이란 선과 악의 이미지와 더불어 세상에 숨겨진 진실을 얘기하고, 하우스 비트에 트랩 사운드 마저 도입하며 실험을 감행했다. 그럼에도 선명한 멜로디를 놓치지 않은 것은 강점이다. 또 ‘숲 속의 파이터’에선 여행을 통한 아찔한 모험담을, ‘프리즌 브레이크’에선 미디어에 스스로를 구속하고 있는 우리의 세태와 현실을 풍자하는 등 세대적 공감을 주는 여러 키워드를 풀어냈다.

불균형 속 조화를 찾는 탐험은 이번에도 유효하다. 동화적 이야기의 틀을 하고 있지만, 거침없이 주제를 던진다. 전체적으로 '혁신'이란 단어보단 '안정'이란 말에 가깝다. 일렉트로니카를 토대로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음에도 몽환적인 전자음은 안정적인 리듬을 선보였고, 가사 역시 온전히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탈 신비주의는 그의 행보와 더불어 음악에서도 드러난다. 곳곳에 배치된 뾰족한 편곡와 반대로, 멜로디는 곡선의 부드러움을 뽐낸다. 단순히 장르의 융합으로 그의 음악을 평가해버려선 곤란하다. 스토리텔러의 역량이 드러난 음반이다.
전자음악에 의존하면서도 그 안에서 휴머니즘의 따뜻한 감성을 건드린 것은 이 앨범의 장점. 그간 여행, 사색을 통해 느낀 여러 키워드가 판타지와 경험으로 깊은 흔적을 새겨 넣었다. 사적인 토로이면서도 보편적인 공감을 자아낸다. 때론 차갑게 세상과 마주하고, 고립된 내면에서 고독을 고백하기도 했다. 발상의 전환보다는 공감에 호소한 결과물이다.
그가 테마로 잡은 잔혹동화 속 얘기처럼, 서태지란 뮤지션은 현실 속에서 불일치하는 존재였다. 기껏해야 티비와 라디오가 전부였던 90년대에서 그의 음악은 딴 세상의 그것과 같았다. 물론 그의 등장 이전에도 스타는 존재했지만, 전 세대의 관심을 받으며 온전히 한 시대를 완벽하게 지배한 주류 대중스타는 없었다. 라디오스타이자, 비디오스타였던 서태지가 유일했다. 요즘 그를 둘러싼 과대평가에 대한 오해 혹은 평가절하된 의견 모두 그러한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본래 '혁신'이란 키워드는 오롯이 시대 안에서 잉태된다. 그리고 지금의 서태지 음악은 혁신이란 코드 보다는, 참신한 시도 속에서 대중친화적 감성을 저격한 것에 가깝다. 서태지는 장르수입상이었을 수도 있고 정말 혁신적인 트렌드리더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두 대중과 언론이 붙인 수식어였으며, 이젠 모두가 유연한 자세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 당신이 서태지를 어떤 식으로 기억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젠 음악으로만 그를 바라봐야 할 때다. 음악 외에 마케터, 비즈니스맨 서태지의 탁월한 한 수를 기대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이 앨범에서도 서태지는 물오른 감각을 선보인다. 그 기준이 모두를 충족시킬 수는 없을지 몰라도. 실험적 시도는 여전하고 대중가수가 가진 본질에 충실한 흔적이 엿보인다. 철저히 계산된 음악의 수를 보여줌에는 틀림없는 음악이다. 그가 세운 상상 속 동화가 비록 현실과 불일치하더라도 그 시도는 여전히 퍼즐을 맞춰가듯 듣는 재미를 주는 것도 분명하다.
특히 서태지를 재평가함에 있어 인터넷 시대의 전후 사정을 놓고 설명할 수 없다. 즉, 인터넷 등 국내 팬들이 해외 음악을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루트가 넓어짐에 따라 그의 음악은 더이상 새로운 것이 아닌게 됐다. 국외 음악 트렌드를 발빠르게 흡수해 자기화를 완성한 서태지 음악에 괜히 배신감을 느끼는 팬들이 있다면 그런 이유에서다. 한때 그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던 이가 있다면 이 앨범에 특별한 감상을 느끼지 못할 수도. 팬들의 실망섞인 소리들은 좋아하던 것이 예전만 못함에 대한 아쉬움, 그들이 느끼는 애증 이상의 이유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서태지가 하나의 현상으로 주목받았던 이유는 트렌디한 음악과 비판정신, 그리고 대중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키면서도 음악적 퀄리티를 보장했다는 점에 있다. 그 과정에서 철저히 주도권을 쥐고 대중을 쥐락펴락했던 영향력이 있었고, 그것은 음악 그 이상의 문화로 발전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주도권은 이제 대중에게 넘어왔다.
필자의 주위엔 그의 음악에 실망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서태지를 둘러싼 여러 논란들. 결국 따지고 보면 가요치고는 썩 괜찮다거나 예전만 못하다고 무작정 쓴소리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 모두 그에 대한 관심이자 애증에서 비롯된 논란. 한때 열광했던 스타로부터 배신감을 당했다거나 그런 이유로 그 음악을 평가절하할 필요도, 특별히 과대평가받아야 할 이유도 전혀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더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고들 한다. 그래서 그는 신비주의를 벗어던진 자신의 행보마냥 음악 속 동화로 대비된 현실을 노래하려 했는지 모른다. 현실에서 부대끼고 싶지만 결코 쉽지 않은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하듯 말이다.
"서태지 시대는 사실 1990년대에 끝났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그걸 받아들이고 노력하면 전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20일 기자회견에서) 진짜 동화책에는 문화대통령 서태지는 없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엔 한결 편안해진 40대 아빠이자, 노래하는 가수 서태지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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