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막판 질주는 ‘아름다운 도전’이긴 했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그들에게 주어진 결과는 어디까지나 ‘4강 탈락’이었다. 시즌 막판의 감성적인 여운에서는 되도록 빨리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이제 새 사령탑을 선임한 SK가 김용희 감독과 함께 향후 10년을 내다본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는 21일 김용희 감독과 2년에 총액 9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3억 원)에 계약을 맺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1년 9월 SK의 2군 감독으로 임명되며 팀과 인연을 맺은 김 감독은 올해 팀의 핵심 전략 파트인 육성부분의 총괄 중역을 맡아 구단 내부 곳곳을 살핀 경력이 있다. ‘신사’라는 별명다운 성품에 소통에도 능해 선수단 및 구단 프런트들과의 관계가 원만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23일 취임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행보에 돌입한다.
실로 오래간만에 1군 감독을 맡은 김 감독이다.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장 공백에 대한 우려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SK는 김 감독에게 중책을 맡겼다. 여기에는 김 감독이 현재 SK가 그려가고 있는 그림을 함께 완성시켜줄 적임자라는 속내가 깔려있다. 이미 2군 감독과 육성총괄로 2년간 그 그림에 대한 스케치 작업을 같이 한 김 감독이다. 때문에 좀 더 수월한 협력 관계가 될 수 있다. 성적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다. 일각에서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훨씬 더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다”라고 기대하는 이유다.

상황을 보면 더 그렇다. 지난해와 올해 SK 내부에서는 “이제는 변해야 할 때다. 지금까지 현실에 너무 안주했다. 변화는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있다”라는 자기반성의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대업에 취해 있었다는 이야기다. 미래를 생각해야 할 때, 현재의 성과에 안주해버렸다. 과감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한 SK에 찾아온 결과는 2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이었다. 그렇다고 하루 이틀에 팀 개혁이 이뤄질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는 새 판을 짤 때다. ‘왕조의 영광’을 아직까지 생각하고 있다면 곤란하다. SK의 왕조를 이끌었던 선수들의 상당수는 이제 SK에 없다. FA 자격을 얻어 떠났거나, 은퇴했거나, 아파서 제 몫을 못하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 그러나 그간 SK 프런트는 이 선수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작업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FA 영입, 외국인 선수 영입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신예 선수들을 키우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현장도 현장이지만 프런트도 2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기는 현장이 하지만 그림은 프런트가 그려줘야 한다. 다행히 좀 더 체계적으로 미래를 보는 시각이 드러나고 있다. SK는 지난해 육성팀을 만들었다. 당장의 1군 전력보다는 2군 및 신인 선수, 그리고 재활 선수 등을 체계적으로 아우르는 SK의 핵심 프로젝트다. 내년 초 개장하는 강화 드림파크(2군 훈련장)의 완공과 더불어 구단의 역량이 육성 쪽으로 쏠리고 있을 정도로 관심이 크다. 장기적인 팀의 미래를 그려가는 도화지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해야 SK가 좀 더 꾸준한 강팀으로 남을 수 있다. 삼성의 사례는 상징적이다.
여기에 당면한 과제도 많다. 당장 올 겨울이 문제다. 올해 당장 6명(최정 김강민 조동화 나주환 박진만 이재영)이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는다. 숫자가 많아 다 잡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정대현 이호준 정근우를 줄줄이 뺏기며 전력에 큰 타격을 입은 SK로서는 또 한 번의 위기다. 여기에 에이스 김광현은 해외진출을 준비하고 있어 사실상 내년에는 SK 유니폼을 입지 않을 공산이 크다. 야수들의 비교적 성공적인 세대교체와는 달리, 투수 쪽에서는 아직 이 작업이 더디다는 것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즉, SK 프런트는 현재와 미래의 그림에서 큰 위협에 직면해 있다. 모두 압박을 받을 공산이 매우 높다. 냉정하게 SK가 내년 4강을 확신할 정도의 전력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나라도 삐끗할 경우 도약의 그만큼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프런트의 위기관리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의미다.
김용희 감독의 선임은 SK 프런트가 좀 더 수월하게 향후 구상을 짤 수 있는 조력자의 등장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김 감독이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다. 4강 전력, 우승 전력을 짜는 것은 프런트다. 그러면서 현장과 조화를 이루는 것. SK가 가을 왕조의 기틀을 다질 때 이뤄냈던 일이었다. 두 번 못한다는 법은 없다. 향후 2년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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