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갑론을박이 일어나도 결정권자의 도장이 없으면 처리가 되지 않는다. 모든 직장 생활이 그렇듯 야구단도 마찬가지다. 올해 야구단 감독 교체에서도 이런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결국 모든 것은 회장님, 혹은 구단주들의 손에 달린 모습이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5개 팀이 모두 사령탑을 바꾸는 상황이 된 이번 가을이다. 말 그대로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보기 드문 일대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포스트시즌이라는 큰 축제가 감독 선임 이슈에 묻힐 정도다. 일단 SK(김용희), 두산(김태형), 한화(김성근)는 새 감독 선임을 마무리하며 폭풍우에서 한 발 벗어났다. 다만 롯데는 장고를 거듭하고 있고 선동렬 감독의 ‘재계약 후 자진사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KIA는 모든 것을 원점에서 시작하고 있다.
5개 팀 모두 상황도, 사정도, 후보자도 제각각 다르지만 공통적인 부분도 상당수 있다. 일단 절차가 그렇다. 구단 내부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후보자를 최대한 추려 구단주 및 그룹 고위층에 올라갈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끝이다. 그리고 그 리스트에서도 비슷한 점이 있다. 바로 내부 승격과 외부 영입을 놓고 고민했거나 고민 중이라는 것이다.

구단주가 다른 의중을 품고 있다면 곧바로 휴지조각이 된다. 때문에 구단은 ‘결정권자’의 입맛에 맞는 후보를 앞선에 배치할 수밖에 없다. 일종의 직무유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월급쟁이’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일단은 내부 승격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 내부 인사들은 구단 내부에 장단점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성향을 파악하기 편하다. 항상 급진적인 변화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혼란을 피해갈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혹은 구단 권력 구도를 깨뜨리지 않기 위한 본능적인 행보로도 풀이할 수 있다.
올해도 이런 경향이 보인다. KIA는 3년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선동렬 감독을 2년 재신임했다. 성적만 놓고 보면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룹 고위층에서 선 감독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한 것이 결정적인 재계약의 사유였다. 그러나 팬들의 거센 비난 여론에 선 감독이 결국 지휘봉을 자진해 내려놓았다.
한화는 반대의 경우였다. 구단에서 내부 승진을 1안으로 두고 일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거세진 여론에 구단 고위층이 움직였다. 구단의 감독 추천안을 반려하고 김성근 감독을 비롯한 외부 후보군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고위층의 ‘의중’을 확인한 한화는 김 감독과 접촉했고 협상은 비교적 빨리 끝났다. 야인 생활을 하고 있었던 김 감독이야 마다할 것이 없었고 고위층이 결정을 내린 이상 구단은 지시를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SK와 두산의 경우는 고위층이 구단의 의견을 받아줬거나 구단의 추천안과 고위층의 의견이 비교적 일치했던 편에 속한다. 두 팀이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KIA와 롯데는 내부 혹은 팀 사정을 잘 아는 후보자들의 승격안에 무게를 둔 광범위한 후보자 리스트가 전달될 것이 유력하다. 결정은 그룹에서 내린다. 오너의 생각에 모든 것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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