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 염경엽의 지혜가 류중일에겐 힌트다
OSEN 조인식 기자
발행 2014.10.28 06: 27

올해 정규시즌 1, 2위를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공통점 중 하나는 마무리가 불안했다는 것이다.
삼성의 임창용은 7년 만에 복귀한 국내 무대에서 31세이브를 따냈지만, 평균자책점은 5.84로 리그 평균(5.21)에도 미치지 못했다. 블론 세이브가 9차례나 있었고, WHIP도 1.59에 달해 지켜보기 힘든 경기가 많았다. 넥센의 뒷문을 지킨 손승락 역시 32세이브로 5년 연속 두 자릿수 세이브 및 3년 연속 30세이브를 기록했지만, 평균자책점은 4.33으로 지난해(2.30)에 비해 2배 가까이 뛰었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두 팀 중 먼저 포스트시즌 경기에 돌입한 것은 2위 넥센이었다. 넥센은 준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를 꺾고 올라온 LG 트윈스와 27일 목동에서 첫 경기를 가졌다. 염경엽 감독은 마무리를 축으로 한 불펜 운영의 전반적인 부분을 두고 거듭 고심했다는 것을 이 경기의 투수교체 과정을 통해 그대로 보여줬다.

이날 넥센은 5-3으로 앞서던 8회초에 손승락을 냈다. 선발 헨리 소사에 이어 조상우가 7회까지 책임졌고, 불펜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인 한현희를 남겨둔 채 손승락이 먼저 나왔다. 8회초를 무실점으로 막은 뒤 8회말 팀이 1점을 추가해 경기는 6-3이 됐는데, 9회초에도 올라온 손승락이 2사에 이병규(9번)에게 안타를 허용하자 넥센은 한현희를 투입해 경기를 끝냈다.
염 감독은 적절한 투수교체로 큰 위기를 방지했다. 손승락의 8회 투입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손승락을 냈다가 9회초 시작과 함께 한현희를 넣는 것도 방법이었겠으나, 1점 여유가 더 생겨서인지 넥센은 손승락에게 2이닝을 맡겼다. 9회초 2사에 이병규와 대결할 기회를 줬다는 것은 손승락으로 경기를 끝내겠다는 계산이기도 했다.
그러나 안심할 수만은 없는 흐름이 되자 한현희가 나섰다. 3점차에 주자 1명이 나갔을 때 바로 한현희를 투입한 것은 만약 홈런을 맞더라도 1점의 리드를 가진 상태에서 막아내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점차에 냈던 손승락을 3점차가 되자 9회초에도 그대로 마운드에 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맥락이다.
또한 한현희에 비해 안정감이 덜한 손승락을 먼저 내보낸 것은 이후 작전 구상에도 차이를 만드는 결정이었다. 불안한 투수를 9회에 썼다가 경기가 뒤집히면 대책이 없다. 하지만 홈 팀은 8회에 역전을 당해도 공격 기회가 2번이 있어 만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갖는다. 손승락을 한현희 앞에 둔 것은 이런 부분까지 고려한 결정일 것이다.
이는 마무리를 놓고 고심 중인 삼성의 류중일 감독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다. 한국시리즈에서 임창용을 붙박이 마무리로 세우기 여의치 않다면 불펜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안지만 혹은 다른 투수를 대안으로 생각해볼 가능성도 지금으로서는 충분하다.
1차전을 마친 뒤 염 감독은 “일단 소사 뒤에는 한현희나 조상우를 준비할 생각이었다. 손승락도 빨리 올라갔는데, 페넌트레이스와 다르게 세이브와 홀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길 수 있는 운용을 할 생각이었다. 상황에 맞춰서 위기를 넘기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한현희를 고정 마무리로 규정하지 않은 것이 손승락의 사기 저하까지 막기 위한 고도의 심리적 전술인지는 모르지만, 탁월한 선택이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사실 불안했다 하더라도 한 시즌 내내 써온 마무리를 포스트시즌에 와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쉬운 결단은 아니다. 새로운 선수를 마무리로 기용한다고 해서 잘 해낸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흔들리는 마무리를 고집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여러 갈래에서 고민하고 있을 류 감독에게 염 감독이 보여준 지혜는 작은 힌트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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