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72) 한화 신임 감독이 자신의 경력에서 ‘14번째 팀’을 만났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13개의 팀과는 다른 한 가지가 김 감독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다. 바로 자신을 향했던 열렬한 팬심이다.
29일 공식 취임식으로 한화의 제 10대 감독에 취임한 김성근 감독은 임기 첫 날부터 강한 메시지로 선수단을 자극했다. “따라오지 못하는 선수와는 함께 하지 않겠다”, “김태균은 3루에서 반 죽을 것”, “나이 많은 야수들을 젊게 만들겠다”, “한화 이글스 선수들은 이발값이 없느냐고 물어봤다” 등 강한 발언이 이어졌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부분에 대해서는 온건한 멘트를 이어갔다. 바로 팬들을 향한 이야기였다.
감독 교체 대상 팀이 5개나 됐던 이번 오프시즌이다. 김 감독도 내심 “불러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루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관념 때문일까. 정작 김 감독에 제의를 한 구단은 없었다. 김 감독도 자포자기 상태였다. 그 때 여론이 움직였다. 김 감독을 영입하라는 청원, 그룹 앞 1인 시위 등이 이어지며 구단을 압박했다. 결국 한화 고위층이 움직였고 김 감독은 3년여 만에 1군 무대에 돌아올 수 있었다.

“무조건 여론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다”라는 경계론도 설득력이 있지만 어쨌든 김 감독이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팬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김 감독도 취임식에서 팬들을 향한 감사 메시지를 잊지 않았다. 김 감독은 “우선 이번에는 감독이 된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 구단에서 불러주시고 팬들이 밀어주시는 바람에 야구장에 돌아올 기회가 생겼다”고 고마워했다. 베테랑 지도자의 진심이 묻어나왔다.
그래서 더 ‘고민이고 압박이다’고 털어놓는 김 감독이다. 김 감독은 “한 번도 결과라는 의식 속에서 야구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결과가 눈앞에 자꾸 보인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지난 5년간 고난의 세월을 보냈던 한화 팬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점진적인 체질 개선을 통한 임기 내 도약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팬들의 힘을 바탕으로 감독직에 오른 만큼 팬들에게 성적으로 보답하고 싶어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당면한 성적에 집착한 야구는 김 감독의 원래 스타일이 아니라는 데 고민이 있다.
김 감독은 “이걸 언제 떨쳐내느냐에 대한 생각을 한다. 기대해주시는 만큼 반드시 해야겠다는 부담감은 다른 팀 감독으로 갔을 때보다 많이 있지 않나 싶다”고 고민을 드러냈다. 하지만 일단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는 숨기지 않았다. 김 감독은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의식이 든다. 내년에는 반드시 위에서 싸우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팬들에 보답을 약속했다.
다만 김 감독의 부담을 덜어줄 만한 하나의 힌트는 있었다. 김 감독은 선수단에게 “순간에 모든 것을 쏟을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줘야 한다. 내년 가을에 젤 마지막 시합에 승리할 수 있도록 목표를 설정하라. 그렇게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라고 당부했다. 그러자 대전구장을 찾은 팬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어쨌든 진정한 팬심은 성적보다는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야구, 그리고 목표가 있는 야구를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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