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음악방송의 품격이 빛난 ‘라디오스타’였다. 웃음과 감동이 어우러진 유재하 특집은 여러모로 음악 팬들을 먹먹하게 만들며 여운을 남겼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부터 ‘우울한 편지’, ‘그대 내 품에’까지. 평생 한 여자를 위해 노래를 만든 음유시인 유재하의 노래는 시청자들의 텅 빈 가을 감성을 충만하게 채웠다.
지난 29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스타'는 1987년 11월 1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유재하 특집으로 꾸며졌다. 이날 특집에는 이들의 동료였던 김광민과 장기호,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인 조규찬, 박원이 출연해 유재하를 추억했다.
김광민과 장기호는 생전 유재하의 외모와 성격, 집안 등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김광민은 유재하와 찍은 과거사진을 보며 “어렸을 때 재하는 개구리 상이었다”고 회상, “그 시절에 저는 술을 못했는데 유재하 씨는 술을 굉장히 좋아했다. 술을 마시다 돈이 떨어지면 집에서 돈을 가져와 더 마실 정도로 애주가였다”고 말했다.

이에 김구라가 “유재하 씨 집안이 사업을 해서 부유했다더라”고 말하자, 김광민은 “그 집안이 재벌에 가까웠다”고 답했다. 장기호는 “저는 재하의 아버님이 탄광을 하신 것으로 안다. 재하가 외모는 중산층 아래쪽 이미지인데 집을 가보면 굉장히 부유했다”고 장난스럽게 과거를 추억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장기호는 친구였던 유재하가 별 거 아닌 단어 조합만으로도 시처럼 멋진 곡으로 썼노라 회상했다. 그러면서 유재하가 유일하게 방송에 나왔던 영상이 남아있는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열창해 여운 가득한 무대를 선사했다. 시간이 흘러도 진한 감성이 돋보이는 유재하의 모든 곡은 한 여자만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 이를 두고 김광민은 “유재하의 그녀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다”고 설명했다.
김광민은 “(유재하가 사랑했던 그녀는) 플루트를 하는 여자 분이셨다. 재하의 1집에 플루트를 불기도 했다. 한 여자만을 사랑했다는 게 대단하다”며 함께 만났던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재하가 그 분을 엄청 좋아했다. 그런데 제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덧붙여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김광민은 이후 무대에 올라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들려줬다. 유재하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은 다음날 썼던 곡 ‘지구에서 온 편지’였다. 연주를 마친 김광민은 “재하 생각이 나네요”라고 조용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김광민은 동생 유재하를 만난다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냐는 MC들의 질문에 “‘그 동안 정말 보고 싶었다. 잘 있었니. 네가 있었으면 좋은 음악도 같이 할 수 있었을 텐데 하여튼 너무나 반갑다’고 말하겠다. 한동안 부둥켜안고 있을 것 같다”고 덧붙이며 고인을 향한 진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조규찬을 시작으로 유희열, 김연우, 심현보, 루시드폴, 방시혁, 스윗소로우, 메이트 임헌일 정준일, 파니핑크 박원 등 수 많은 대한민국 대표 싱어송라이터들을 배출한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조규찬과 박원은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를 나가게 된 계기 등을 설명하며 유재하를 향한 애틋함을 전했다.
그리고 방송 말미 ‘라스’ 제작진은 “그리고 우리 곁을 떠난 한 사람. 편안히 잠드시길.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라는 자막으로 지난 27일 유명을 달리한 신해철을 추모했다. 유재하, 그리고 신해철. 제작진은 ‘일상으로의 초대’ 뮤직비디오로 엔딩을 장식하며 그렇지 않아도 마음 울적한 가을을 아스라한 몽환으로 이끌었다.
‘라디오스타’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