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정유진의 별다방] 흔히 한국 드라마의 가장 큰 병폐로 ‘회사에서 연애하고, 학교에서 연애하고, 병원에서 연애하고…’를 들고는 한다. 유행어를 빌리자면 일명 ‘기승전연애’라 할 수 있는 이 장르 불문 연애 공식은 한국 드라마의 주요한 특징이다.
최근 인기를 끌거나 혹 그 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는 드라마들을 보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취향이나 시각이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 장르물이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연애라는 요소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작품들도 흥행에 성공하며 새로운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
그 예로 들 수 있는 작품이 사회초년생의 치열한 삶을 담은 tvN 금토드라마 ‘미생’이다. ‘미생’은 여러모로 자격미달인 인턴사원 장그래(임시완 분)를 중심으로 그가 입사한 회사 원 인터내셔널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오피스 드라마인 이 작품의 이야기는 흔히 연애가 중심이 되는 타 드라마 속 관계와 달리 상사와 부하직원, 동료 직원 등 직장이라는 사회적 관계를 중심으로 사건이 펼쳐진다.

연애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 ‘미생’은 그럼에도 불구, 매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를 낳고 있다. 드라마가 ‘기승전연애’가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드라마에는 장그래나 그의 여자 동료인 안영이(강소라 분), 장백기(강하늘 분) 사이에서 미묘한 감정의 교류가 있지만, 이를 연애의 감정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미생’이 연애없이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이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은 실감나는 디테일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강한 공감의 힘 때문이다. 시청자 비율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직장인들은 자신의 직장 혹은 사무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미생’을 보며 깊이 공감한다. 혹 직장을 경험해보지 않았어도 ‘미생’ 속 인물들은 한국 사회 속 다양한 인간 군상과 관계들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미생’은 미덕은 단순히 공감가는 디테일로 끝나지 않는다. 연애 관계 못지않게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이 등장해 그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케미스트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재미를 주고 있는 것.
'미생'과 달리 대놓고 연애를 보여줘 시청자들의 아쉬운 소리를 듣고 있는 작품도 있다. KBS 2TV ‘내일도 칸타빌레’가 그 예다. 일본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일본에서 제작된 드라마가 천재 음대생들의 성장 이야기와 풍부하고 깊이 있는 클래식 음악의 활용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일본에서의 인기를 그대로 업고 한국에 들어온 이 작품은, 그러나 원작이나 일본드라마만큼의 파급력을 만들고 있지는 못한 상황.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일본 작품이 너무 뛰어났다”며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분명 한국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내일도 칸타빌레’가 저지르고 있는 실수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는 연애 말고는 드라마에서 기대할만한 것이 없단 점이다.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영화에서 가장 큰 주인공 중 하나가 돼야 하는 음악이 너무 평범할뿐더러 배우들과의 싱크로율도 잘 맞지 않는다는 평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내일도 칸타빌레’가 저지르고 있는 가장 큰 실수는 양념처럼 등장해야할 연애 이야기가 클래식 음악이나 성장 스토리와 자리가 바뀌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 즉 주와 조가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연애의 요소가 등장하는 건 좋지만,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고서야 그게 전부가 되면 안 된다는 게 요즘 시청자들의 의견이다.
연애 요소의 적정한 수준을 잘 지키고 있는 경우도 있다. MBC 새 월화드라마 '오만과 편견'이 일례. '오만과 편견'은 외부적으로만 본다면 '검찰청에서 연애하기'라는 한국식 드라마의 원칙을 지키고 있지만 이를 주로 다루지 않고 양념처럼 드라마에 버무리며 오히려 신선한 재미를 주고 있다. 주인공 두 남녀의 얽힌 관계가 드라마의 큰 틀을 이어가고 있지만, 매회 검찰청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져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
그런 의미에서 '기승전연애'는 이제 더 이상 큰 문제가 아니다. 이 '기승전연애'를 어떻게 활용해 균형을 맞춰갈지가 중요하다. 연애를 다루는 드라마 연출자 혹 작가들의 방식이 조금 더 노련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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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