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 인간의 나약함 끝에 ‘가족’은 없었다 [리뷰]
OSEN 조민희 기자
발행 2014.11.04 17: 24

[OSEN=조민희 인턴기자] 보는 내내 인상이 찌푸려졌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심기가 불편했다. 한순간의 치명적인 실수로 철저히 파괴된 가족. 가장 따뜻한 안식처는 어느 누구하나 안아줄 수 없는 가시덩굴이 돼있었고, 그 곳에서 그들은 어디에도 기댈 곳 없이 서서히 무너져갔다.
순임(김영애 분)은 큰 딸 영희(도지원 분)와 사위 상호(송일국 분), 작은 딸 꽃잎(김소은 분)과 함께 살고 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큰 딸 영희의 아기가 태어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순임 가족에게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순임의 실수로 아기가 죽게 되는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화목했던 가족에게 악몽이 찾아온 순간, 가족은 더 이상 서로를 안아주지 못하게 된다.
죄책감에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순임, 그런 순임을 ‘살인자’라며 분노하는 영희, 그들을 그저 지켜보며 공허함에 잠시 외도를 하는 상호, 학교폭력으로 입은 상처로 언니에게 큰소리치는 꽃잎까지. 이렇게 순임 가족은 각자가 가진 상처에 서로를 외면했고, 그 외면 끝에 곪아터진 상처에 그들은 비극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지극히 평범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파멸을 맞은 가족을 통해 어쩌면 우리가 보지 못했던 가족의 이중성을 엿본 것이 아닐까 싶다. 너무나 편한 곳이지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없는 곳, ‘가족’은 그렇게 가깝고도 먼 존재였다. 그들을 무너뜨린 것은 치매도, 아이의 죽음도, 폭력도 아니었다. 내면에 감춰져있던 인간의 나약함, 그 나약함으로 만들어낸 불친절한 가족관계가 결국 그들을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었다.
다소 민감하고 자극적인 소재임에도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래도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영화 ‘현기증’은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그 속에 감춰진 인간의 본질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 현기증이 날만큼 소름끼쳤던 배우들의 연기가 만들어낸 파괴된 가족은 보기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가족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민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samida89@osen.co.kr
‘현기증’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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