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13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삼성은 페넌트레이스 1위에 오르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 이후 정상 등극에 목말랐던 삼성. 한화와 현대를 차례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두산에 2승 4패로 무너졌다. 당시 이승엽은 타율 3할7푼5리(24타수 9안타) 3홈런 7타점 맹타를 휘둘렀으나 팀이 패하는 바람에 빛을 잃었다.
이승엽은 5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한국시리즈 2차전서 결정적인 한 방을 터트리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 6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한 이승엽은 1회 2사 1,3루서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두 번의 실패는 없었다. 이승엽은 3-0으로 앞선 3회 2사 2루 상황에서 넥센 선발 헨리 소사의 1구째 직구(147㎞)를 잡아 당겨 우중간 펜스를 넘기는 2점 홈런(비거리 115m)으로 연결시켰다. 경기 초반 흐름을 완전히 제압하는 한 방이었다.

1차전에서 3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침묵했던 이승엽은 이날 시리즈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다. 그는 이날 포스트시즌 통산 14번째 대포를 쏘아 올리며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 홈런 기록(종전 타이론 우즈)을 경신했다. 삼성은 넥센을 7-1로 꺾고 1차전 패배를 설욕했다.
그에게 만족은 없었다. 포스트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달성한 소감을 묻자 "기분이 좋지 않다. 나머지 타석에서 어이없는 삼진을 당해서 사실 실망스럽다"며 "내일 휴식인데 연습을 좀 해서 3차전부터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른 타격을 하려고 한다. 그것밖에 생각이 없다. 기록도 중요하지만 우선 앞으로 타격감을 올려서 내 역할을 할 만큼 해줘야 한다"고 아쉬워 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짓는 그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게 이승엽의 생각. "1차전서 패했지만 동요하지 않았다. 미팅도 없었다. 오늘 승리했기 때문에 이 기세를 이어갔으면 좋겠다. 선수들이 분명 1패를 했더라도 지난해 2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위축되거나 그런 것은 없었다. 좋은 결과 날 것이라고 생각했고 예상대로 잘 됐다. 2경기를 해서 게임에 다시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3차전에는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시리즈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
이승엽은 13년 전의 기억을 잊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MVP 등극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 이승엽은 "어떻게 해서든 마지막 경기에서 웃고 싶다. 좋게 마무리가 되면 한 시즌을 만족하게 된다"며 "한국시리즈 역사상 페넌트레이스 우승해도 한국시리즈에서 패하면 묻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01년에 비참했다.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마지막까지 노력해야 한다. 경기가 좋게 끝나면 1년 간의 스트레스가 다 풀린다. 마지막 경기서 헹가레를 해야 한다. 그때까진 만족하지 않는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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