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꼬데쓰!"
지난 6일 일본 오키나와 고친다구장. 한화의 마무리캠프가 치러진 이날은 유독 곡소리가 넘쳐흘렀다. 김성근 감독 부임 후 처음으로 갖는 '필딩데이'로 하루 종일 수비 훈련만 하는 날이었다. 그라운드 모든 공간을 활용해 코치들은 야수들에게 펑고를 치고 또 쳤다.
쉬는 시간이라고는 한 박스에 들어있는 야구공이 다 떨어져서 다시 공을 주워야 할 때이거나 중간 중간 잠깐 불어닥치는 모래바람이 불 때밖에 없었다. 20분 동안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또 다시 훈련에 돌입하는 빡빡한 일정. 자칫 훈련 분위기가 무겁게 흘러갈 수 있다.

하지만 한화에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유쾌함을 타고난 '분위기 메이커' 정근우(32)가 있기 때문이었다. 당초 정근우는 이 기간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지만 김성근 감독 부임과 함께 이를 취소하고 오키나와로 넘어와서 연일 넘어지며 구르고 있다.
특히 정근우는 훈련 내내 특유의 입담으로 분위기를 돋우는 데 타고났다. 몸은 힘들어도 입은 살아있다. 보통 선수들이 기본적인 기합과 악소리를 내는 데 반해 정근우는 길고 빠르게 이야기를 한다. 지친 나머지 "엥꼬데쓰!(고장나 움직이지 못한다는 뜻의 일본어)"라고 소리치는 건 기본적인 것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정체불명의 말로 배꼽 잡게 한다.
김광수 수석코치의 거듭된 펑고에 정근우는 "진짜 그만 좀 하자. 언제까지 받아? 죽여라, 그냥 죽여"라며 혼잣말했다. 그런데도 펑고가 끝없이 이어지자 정근우는 "내가 전생에 뭐 잘못한 것이라도 있어요?"라고 절규했다. 고된 훈련에 지쳐있던 선수들도 정근우의 한마디에 웃음이 빵하고 터질 수밖에 없었다.
고참이자 주축 정근우가 앞장서 훈련을 받고 분위기를 끌어올리자 나머지 선수들도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정근우의 엔조이 바이러스도 전염됐다. 절친한 친구 김태균은 훈련 중 다리가 풀려 마치 슬라이딩하듯 넘어지거나 일어설 힘이 없어 몸을 데굴데굴 굴러 자리를 비켜주는 몸 개그를 선보였다. 김태완도 제자리에서 5바퀴를 돌고 뜬공 타구를 처리하는 훈련에서 그만 다리가 꼬여 넘어져 웃음을 선사했다.
수비 훈련을 다 마친 뒤에 정근우는 넋을 잃은 표정으로 터벅터벅 덕아웃에 들어오며 "세월이 가면~"이라고 악에 받힌 듯 노래를 불렀다. 덕아웃은 또 한 번 웃음바다가 됐다. 정근우는 "정신상태가 나갔지 않나 싶어요"라고 자학 개그까지 했다. 정근우 덕분에 공포의 지옥 훈련도 유쾌하게 끝났다.
김광수 수석코치는 "운동은 즐거운 마음속에서 움직여야 한다. 어차피 선수 본인이 해야 할 몫이고 의무인데 억지로 하는 건 기본적인 자세에서 어긋 난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야 하는 것이다"며 정근우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아무리 고되고 쓰러지는 훈련이라도 마음이 즐겁기에 정근우는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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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