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TV] "술맛을 알아?"..모두를 울린 '미생(未生)'의 한마디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4.11.08 07: 09

“당신들이 술맛을 알아?”
어느 ‘미생’의 한마디가 시청자들을 울렸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 한마디에는 열심히 일을 할 뿐 아니라 고집과 자존심을 꺾고 또 꺾어도 끝내 힘의 논리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직장인들의 애환이 처절하게 담겨있었다. 능력 있고 자존심 강한 ‘미생’의 오과장 이성민의 좌절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줬다.  
지난 7일 오후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미생'(극본 정윤정 연출 김원석)에서는 최선을 다해 추진했던 일들이 여러 번 윗선의 제지로 무산돼 실망하는 오과장(이성민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오과장은 영업팀 상사인 김부장이 추진하고자 하는 중국 건 대신 이란의 원유 개발 건을 추진해보고자 패기 있게 나섰다. 김부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어려운 일일수록 의욕이 생기는 특유의 도전정신이 발동됐다. 그는 이란 원유 개발 건이 가진 리스크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 회의시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충분히 가능할법한 일임에도 김부장에 의해 반려됐다.
결국 중국 건을 추진할 수밖에 없게 된 오과장은 그간 정리하고 모았던 자료들을 허망하게 바라보며 영업3팀 부하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만취 상태가 돼 들어간 집에서는 아내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는 그저 애꿎은 아내에게 평소 같지 않은 스킨십을 하며 서글픔을 달랠 뿐이었다.
다음날이 되고, 오과장은 다시 기운을 내 중국 건을 성사시키기 위해 매달렸다. 김부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중국 건은 달라진 중국 내부 사정에 의해 이전보다 리스크가 커졌다. 불안한 조건을 본 김대리(김대명 분)는 다시 한 번 건의를 해보자고 제안했지만, 이미 한 번 실패를 맛 본 오과장은 이를 가능하게 만들 방법을 강구하며 어떻게든 김부장의 뜻을 성사시키려 했다.
열정적으로 매달렸건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뒤늦게 중국의 정세를 읽은 김부장이 리스크가 큰 것을 확인하고는 발뺌을 하기 시작한 것. 김부장은 오과장에게 “당신이 얘기한 것보다 훨씬 위험하지 않느냐”며 “당신이 끌고 온 아이템 중에서 해보자고 한 것 아니냐. 당신의 아이템이니까 잘 추진해보고 바로 보고하라. 그리고 보고서에 내 아이디어라는 부분은 지워버리라”고 책임을 전가시키려 했다. “내가 백업을 해주겠다”던 그는 이내 말을 바꿔 “회사가 백업이지 뭘 찾느냐”고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오과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끝내 가능한 방법을 찾아내 김부장에게 보고했고, 김부장은 이를 기뻐하며 다시 오과장과 영업3팀의 사업을 밀어주겠다고 했다.
오과장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영업2팀이 김부장에게 자신들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을 밀어달라며 식사자리까지 마련한 것. 난처해진 김부장은 오과장을 불러 “2팀 거 먼저가고 그 다음에 3팀 것을 가자"고 제안했고, 오과장은 이미 예상한 일인 듯 수긍했다.
회사 내부에서 벌어지는 피터지는 정치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의외의 복병 최전무(이경영 분)가 불쑥, 자원팀 부장급들과 함께 나타난 것. 최전무는 오과장의 기획안을 슬쩍 보고는 "이건 자원팀 일 아니냐"며 "영업3팀에 어울리는 메뉴를 찾으라"고 말한 뒤 중국 건 기획안의 최종 반려를 종용했다. 이는 김부장 역시 어찌할 수 없는 일. 씁쓸한 김부장은 영업2팀과 자리를 뜨고 오과장은 김대리-장그래(임시완 분)와 함께 남아 또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오과장은 년차와 능력에 비해 고과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 그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그의 부하인 김대리는 “오과장님이 고과 관리를 안 한다. 실적이 분명한 일을 해서 결과 내야하는데”라는 말로 오과장이 처한 서글픈 상황을 설명했다. 휘청이며 집에 들어간 오과장은 서글픈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욕실에서 구역질을 한 후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당신들이 술맛을 알아?”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직장인들의 깊은 애환이 뿜어져 나왔다.
끝없는 먹이사슬에서 결국엔 누군가에게 먹힐 수밖에 없는 '을'의 위치인 것이 직장인들의 현실이다. 이날 오과장의 모습은 아직은 완전할 수 없는, 그래서 늘 어딘가 서운하고 섭섭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미생(未生)의 초상이었다.
한편 '미생'은 장그래(임시완 분)가 프로 입단에 실패한 후, 냉혹한 현실에 던져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동명의 웹툰 '미생'을 원작으로 했다.
eujenej@osen.co.kr
'미생'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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