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인터스텔라'가 SF 영화의 또 다른 장을 열었다는 평이다. 소위 '레전드'로 읽혀지는 기존 SF물보다 작품적으로 더 '획기적'이라기 보다는, 기존 SF 장르를 나름 집대성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SF는 'science-fiction' 공상과학 영화를 일컫는데, 세부적인 하위 장르들로 나눌 수 있다. SF영화의 대표 시리즈로 언급되는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는 우주 모험 어드벤처라고 할 수 있다. 즉 우주를 배경으로 한 액션 활극으로 관객들에게 일종의 현실도피 쾌감을 선사한다. 과학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그렇기에 과연 과학적 고증에 무관심한 이런 영화들을 진정한 SF로 볼 수 있냐는 시각도 있지만 어찌보면, 가장 인간적인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산물이란 점에서 가장 공상과학 영화답다고도 할 수 있다.
지난 해 전세계를 놀라게 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는 당장 '인터스텔라'가 넘어야 할 산으로 꼽히기도 한다. 적어도 최근 등장한 SF물 중 가장 획기적이고 SF의 개념 자체를 흔들어놨던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재난물'이다. 그러나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일어나는 인류의 재앙과는 전혀 다른 플롯의 영화라 SF물에서도 타 작품들과 같은 비교 선상에 놓이기가 어려웠다. 영화를 보러 간다, 라는 게 아닌 영화를 체험하기 위해 마치 놀이동산 가듯 극장을 가는 신기한 모습이 연출됐는데 그 만큼 우주 공간에 대한 일정 정도의 리얼감을 경험하게 해준 영화다. 여태껏 우주 공간 그 자체가 공포가 된 영화는 없었다. 이는 '에이리언' 같은 SF호러물과도 전혀 다른 모습이였다.
지난 6일 개봉한 '인터스텔라'는 '그래비티' 보다도 로버트 저메키스의 '콘택트',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계보에 있다. 실제로 크리스토퍼 놀란은 스탠리 큐브릭이나 리들리 스콧을 존경하는 감독들로 꼽아왔다.

이 영화들은 한 마디로 과학과 철학의 결합이다. 과학적 지식과 고증을 동원하고 거기에 사유를 담았다. 과학과 철학은 둘 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난해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관객이 감독이 전달하는 방대한 정보를 제대로 흡수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재미가 없다는 건 아니다. 이해하게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전작 '인셉션'으로 이미 사람들의 머리를 어지럽게, 기분좋게 흔들어 놓은 바 있다.
그러면서도 '인터스텔라'는 외계 생명체가 등장하는 호러물 '에이리언'과 서정적인 영상미 속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주목됐던 '블레이드 러너'도 상기시킨다. 두 영화 모두 리들리 스콧의 작품들이다.
'인터스텔라'를 '기존 SF의 집합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영화를 관람하기 전 보면 도움이 될 영화로 많은 주옥같은 SF물이 대거 언급되기 때문도 있다. 위에 나열된 작품들 뿐 아니라 브라이언 드 팔마의 '미션 투 마스', 폴 W.S. 앤더슨의 '이벤트 호라이즌', 필립 카우프만의 '필사의 도전',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 등이 그 작품들이다.
이례적으로 한 영화를 두고 이 같은 '첨부 목록'이 달리는 '인터스텔라'는 영상적으로는 매우 획기적이면서도 반대로 드라마와 플롯, 캐릭터는 '매우 고전적인 구성을 따른다. 그렇기에 취향을 타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169분에 코믹북 원작도 없으며 시리즈물의 시작을 알리는 것도 아닌, 이 같은 대작이 2014년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놀랍다는 사실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2001년 '메멘토' 이후 대형 스튜디오에서 팬덤을 등에 업고 스펙터클을 중시하는 '다크 나이트' 같은 영화를 만들어 장르를 뛰어넘고 평론가들을 매료시켰으며 흥행수익을 올렸다. 그렇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nyc@osen.co.kr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