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 한화 첫 펑고, 폭풍 같았던 41분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4.11.09 13: 01

"내가 펑고 치면 비상이야".
한화 김성근(73)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는 역시 펑고다. 일흔이 넘은 노장이지만 한 번 배트를 잡으면 멈출 줄 모르고 펑고를 날린다. '한 번 붙잡히면 끝을 본다'는 김 감독은 펑고를 위해 스스로 먼저 몸을 만들었다. 이달 초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캠프에서도 아령을 들어가며 "내가 펑고 치면 비상"이라고 경고했다.
잔류 선수 점검과 청와대 강연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김 감독은 8일 복귀 첫 훈련에서부터 마침내 펑고 배트를 집어 들었다. 오전 11시28분 김 감독은 외야에서 내야로 건너와 4명의 내야수를 불러 모았다. 김태완·김회성·전현태·박한결이 지목받았다.

김 감독은 펑고 초반 몇 차례 빗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쏘리"를 외치며 선수들에게 미안하다는 표시를 나타낸 뒤 배트 장갑을 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선수들이 받기 쉬운 펑고는 없었다. 팔을 뻗고 몸을 날려야 잡을 수 있는 강습 타구만 보냈다.
선수들의 유니폼이 흙투성이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양 옆으로 구르던 선수들에게 기습적으로 정면 바운드 타구를 날리며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이 반복됐다. 펑고 시작 5분이 흐른 뒤에는 간판스타 김태균까지 김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김 감독은 더욱 강도 높게 펑고를 쳤다.
김 감독의 얼굴에도 땀이 흘렀고 급기야 모자를 벗었다. 그런데 단순히 펑고를 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어떤 동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접 몸으로 보여줬다. 김 감독은 "시야가 움직여서는 안 돼", "고개랑 어깨 들지 말고 그대로 다리부터 움직여야 돼"라고 소리쳤다.
특히 선수 개개인의 문제점을 단번에 파악, 곧바로 주문 사항을 전했다. 박한결에게는 "글러브를 위에서 내리지 말로 아래에서 위로 올려", 김태완에게는 "다리가 안 움직여 다리가. 다리가 가면 잡았잖아", 김회성에게는 "몸을 일으키지 마. 미리 먼저 글러브가 움직이니 동작이 늦다"고 세세하게 지적했다.
정신무장을 시키는 독한 멘트와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도 적절하게 섞었다. 다리가 살짝 꼬인 김태완에게는 "너 춤추러 왔냐"고 농담했고, 크게 다이빙한 김태균에게 "너 때문에 오키나와 가라앉겠다"고 농을 던졌다. 김회성이 잡을 수 있는 타구를 놓치자 "다시 경찰청 돌아갈래?"라고 했고, 파이팅을 잊은 박한결에게는 "너 몇 살이야? 소리 크게 내고 똑바로 해라"고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타협도 없었다. 김 감독은 "잡아도 동작이 안 되면 다시"라며 김태균에게 3연속 펑고까지 날렸다. 김태완이 타구를 놓치고 나머지 잠시 쓰러져 숨을 고를 때에는 "못 잡았으면 미안해서라도 빨리 일어나라"고 한마디 했다.
채찍만 준 게 아니다. 당근도 줬다. 김 감독은 김태균이 멋지게 다이빙캐치하자 "어이 최고다"며 기를 북돋아줬고, 전현태가 안정감 있게 캐치할 때에는 "오케이, 나이스!"라고 칭찬했다. 선수들도 일심동체가 돼 서로 함께 아쉬워하고 격려하며 힘을 불어넣었다. 중간에 비가 잠깐 내리기도 했고, 김태완은 눈에 흙이 들어가 물로 씻어내기도 했다. 김회성은 글러브가 거의 너덜너덜해졌다.
정오가 지나 12시9분이 되어서야 김 감독의 펑고는 끝났다. 폭풍 같았던 41분, 선수들의 유니폼은 마치 탄광촌에서 나온 듯 더러워져 있었다. 선수들만큼 김 감독도 지쳤는지 감독실에서 유니폼을 갈아 입었다. 한화에서 첫 펑고는 비와 땀으로 뒤범벅됐다. 김 감독은 "오랜만에 펑고를 쳐서 그런지 잘 안 되더라. 며칠 있어야 되겠다"고 했다. 이제 첫 펑고를 시작했을 뿐, 진짜 지옥 펑고가 또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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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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