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눈매에 모델이라는 왠지 모를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까지. 모델 겸 배우 안재현의 이미지는 차가웠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차가운 이미지를 인정할 정도로 안재현의 첫인상은 날카로웠다.
그런 그가 영화 '패션왕'에선 한없이 망가졌다. "제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장면이 등장했죠"라며 스스로 웃을 정도로 '패션왕'에서의 안재현은 코믹하다.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은 것도 모자라 손발이 모두 오그라들 정도의 포즈는 절로 "어떡해"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다.
정작 본인은 즐거웠단다. 의상을 입고 한참을 웃었다는 그는 영화를 위해선 그런 코믹한 요소를 포기하면 안될 것 같았다고 했다. 오글거리지는 않았냐는 질문에는 "그게 '패션왕'의 매력이죠"라며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의상입고 빵 터졌어요. 즐거웠죠. 내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장면이구나 생각도 들었고 내 인생에서 그런 기억이 하나씩 생긴다는게 즐겁더라고요. 그런 요소를 포기하면 영화가 안 될 것 같았어요. 오글거리지는 않냐고요? '패션왕'은 오글거리는 재미죠(웃음). 그걸 깨려고 했다면 '뭐야' 했을텐데 끝까지 오글거림으로 가니까 결과적으로는 두시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오글거림이 잘 녹아든 것 같아요(웃음)."
모델이 아닌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딛었던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연기라는 것을 처음 해본 안재현은 자신의 길이 아닌 것 같음에 배우를 그만두려 했었다. 하지만 점차 연기의 맛을 알아갔고 그 와중에 선택한 것이 바로 이번 '패션왕'. 아무래도 모델과 패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보니 다른 연기보단 쉬울 줄 알았다는 안재현은 "연기는 연기더라고요"라며 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패션왕' 감독님이 저를 보고 싶다고 하셔서 인사드리러 갔는데 시나리오도 보기 전에 저한테 악수를 하면서 '우리 하는거지?'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별에서 온 그대' 때도 연기에 대한 뜻보다는 날 좋게 봐주신 박지은 작가님과 장태유 감독님, 이분들과 함께라면 잘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어서 선택한 건데 '패션왕'도 감독님이 절 좋게 봐주시니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지금도 모델과 배우는 다른 길이고 모델이 업그레이드돼서 배우가 되는게 아니라 다른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패션왕'이라면 좀 더 쉽게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확실히 연기는 연기더라고요(웃음). 모델적인 요소가 있어도 플러스 요인은 아닌 것 같아요."

덕분에 '패션왕'은 배우 새내기, 안재현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작품이다. 대사 외우기에 급급했던 그를 조금은 여유를 갖게 해준 작품도 '패션왕'이고 책임감을 느끼게 해준 작품도 '패션왕'이었다.
"정말 큰 도움을 받았어요. 신인이라 울렁증이라는게 있잖아요. '패션왕'은 '별에서 온 그대' 끝난 시점에 들어간 영화인데 아무래도 카메라 앞에서 조금 여유로워질수있는걸 배운 것 같아요. '별에서 온 그대' 때는 급했어요. 연기를 보여준다기 보단 대사를 틀리면 안된다는게 강했죠. 하지만 '패션왕'을 하면서 그런 것에서 오는 부담감이 줄었어요.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와 중간중간 섞이면서 촬영을 했는데 다들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실수하면 안 된다는 책임감, 그리고 함께 하면서 상승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안재현의 눈에는 그 '여유'가 부러웠나보다. 엄청난 분량의 대사들 속에서도 여유있게 자신의 연기를 가져가는 배우들의 모습은 안재현의 롤모델이 됐다. 자신도 여유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밝힌 안재현은 찌질한 캐릭터도, 짠돌이 캐릭터도, 그리고 양면성을 가진 캐릭터도 해보고 싶다며 연기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제가 행복한 현장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너무나 긴장되고 어깨도 무겁고 그렇거든요. 선배님들 연기하는거보면 긴 대사도 즐겁게 하세요. 저도 그분들처럼 여유롭고 즐거웠으면 좋겠고 몰입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아마 그게 제일 큰 목표겟죠? 즐거움을 몰입해서 드릴수도 있고 슬픔을 드릴수도 있고, 연기라는건 시청자 입장에선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신 혹은 구경하고 싶은건데 그게 몰입이 안된다면 배우로서 제일 좋지 않은 거겠죠. 하고 싶은 캐릭터요? 찌질한 캐릭터 해보고 싶고 짠돌이 캐릭터 해보고 싶기도 하고 양면성을 가진 캐릭터 매력있을 것 같아요. 집에서는 굉장히 후줄근한데 밖에선 허세 부리고 다니는 이런 캐릭터있잖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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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