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한의 8회였지만 기적의 9회였다.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의 승자는 삼성이었다. 넥센은 선발 헨리 소사의 역투, 유한준의 그림같은 호수비, 필승조를 가동하고 6회 얻은 한 점을 끝까지 지키는 듯 했다. 숱한 찬스를 놓친 삼성은 0-1 패배의 위기에서 9회 2사후 1,3루에서 최형우의 기적같은 끝내기 2루타로 역전극을 장식했다. 삼성은 3승2패의 유리한 고지에 오르며 4연패에 파란불을 켰다.
이날은 삼성은 선발투수 릭 밴덴헐크의 눈부신 호투가 1회부터 펼쳐졌다. 5회까지 1루를 밟은 주자는 단 한 명이었다. 2회초 2사후 김민성이 내야안타로 1루에 진출했다. 그러나 득점으로 이어질 수 없었다. 워낙 구위가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넥센은 이렇다할 기회가 없었지만 삼성은 여러차례 득점기회가 있었다. 1회말 2사 1,2루에서 이승엽이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2회와 5회 선두타자가 출루했지만 득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7회에서도 2사 1,2루 기회도 결정타가 나오지 않았다.
특히 중반까지 두 번의 선두타자 출루를 살리지 못한게 아쉬웠다. 2회초 선두타자 박석민이 볼넷을 골랐다. 류중일 감독은 번트 대신 강공을 선택했다. 박해민의 타격감이 좋다고 판단한 듯 했다. 그러나 박해민의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2사후 김상수의 우전안타가 나왔지만 주자는 여전히 1루에 있었기 때문에 득점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또 한 번의 기회는 5회말이었다. 9번타자 김상수가 좌전안타를 터트리고 1루를 밟았다. 발빠른 주자였기 때문에 흐름의 대반전이 일어날 수 있었다. 더욱이 상위타선으로 연결되는 시점이었다. 이때도 류중일 감독은 나바로의 장타력과 타격감을 믿었다. 그러나 나바로는 유격수 땅볼에 그쳐 병살을 당할 뻔 했다.
반면 넥센은 단 한번의 기회를 번트를 이용해 득점으로 연결시켰다. 6회초 선두 박헌도가 좌전안타로 출루하자 박동원이 1루쪽으로 완벽한 번트를 성공시켰다. 이어 서건창이 불리한 카운트에서도 밴덴헐크의 슬라이더를 노려쳐 1루수 옆으로 빠지는 적시타로 연결시켰다. 원샷원킬의 득점장면이었다.
사실 염경엽 감독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작전이었다. 삼성의 두터운 마운드를 생각하면 3차전 처럼 한 점을 뽑고 틀어막는 수순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이날 투수들의 구위를 본다면 선취점이 대단히 중요한 경기였지만 공격지향적인 류중일 감독은 타자들을 믿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최대의 승부처였던 8회는 삼성에게는 너무도 뼈아팠다. 3번 채태인이 중전안타를 날려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 당연히 번트를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4번 최형우는 볼넷을 골랐고 5번 이승엽은 사구를 얻어 만루기회를 잡았다. 중심타선이 만든 무사 만루기회였다. 항상 그렇듯 기적의 8회를 여는듯 했다. 그러나 박석민, 박해민 이흥련이 모두 범타로 물러나면서 주자를 홈에 불러들이지 못했다. 통한의 8회였다.
그러나 기적의 9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1사후 나바로의 땅볼을 넥센 유격수 강정호가 떨어뜨리면서 기적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다음타자 박한이가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채태인이 우전안타를 만들어 기적의 징검다리를 놓았고 최형우가 불리한 카운트에서 1루수 박병호의 옆을 스치는 극적인 끝내기 2루타를 날려 역전에 성공했다. 리그 최강의 선수들의 힘이 돋보인 순간, 류중일 감독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승리의 여신은 뚝심의 류중일 감독의 손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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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