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불운했다. 잘 던지고도 2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 그러나 릭 밴덴헐크(29, 삼성)의 심정에 아쉬움은 없었다. 자신의 승패 여부를 떠나 극적인 팀 승리에 환호했다. ‘에이스’다운 소감이었다.
밴덴헐크는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 선발등판해 7이닝 동안 95개의 공을 던지며 5피안타 5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다. 최고 153㎞의 빠른 공과 130㎞ 후반대의 슬라이더 조합을 앞세워 넥센 타선을 꽁꽁 묶었다. 6회 1실점을 하긴 했지만 추가 실점을 막았고 7회까지 던지며 불펜의 여유를 안겨줬다. 자신의 임무는 100% 수행했다.
그러나 승리투수가 되지는 못했다. 팀 타선이 1점도 뽑지 못하는 빈타에 허덕인 탓이다. 사실 1차전에서도 비슷한 아쉬움이 있었던 밴덴헐크였다. 부담감이 큰 1차전 선발로 나서 6⅓이닝 동안 2실점으로 버텼으나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하고 2-2로 맞선 7회 마운드를 내려갔다. 한국시리즈 2경기 13⅓이닝에서 3실점으로 잘 던졌지만 2경기 모두 승리를 챙기지 못한 셈이 됐다.

하지만 경기 후 밴덴헐크는 팀 승리에 의미를 뒀다. 8회까지 단 1점도 뽑아내지 못하고 벼랑 끝에 섰던 삼성은 9회 2사 1,3루에서 터진 최형우의 극적인 2타점 끝내기 안타에 힘입어 2-로 이기고 시리즈 전적을 3승2패로 만들었다. 밴덴헐크는 경기 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와우!! 대박승리!!”라며 감탄한 뒤 “삼성 블루가 가득한 잠실야구장에서 정말 놀라운 경기였습니다! 오늘 아주 열정적인 응원 감사드립니다! 이겨서 너무 기쁩니다! 내일 또 뵈어요! 삼성 파이팅!”이라고 소감을 남겼다. 자신의 승패보다는 팀 승리 자체에 기쁜 모습이었다.
이날 경기장에서 직접 남편의 경기를 지켜본 밴덴헐크의 부인 애나 역시 자신의 트위터에 “TOGETHER WE BELIEVE IN #Gov8! 내일 챔피언쉽 우승을 위해 다 같이 응원해요!”라며 남편의 승리보다는 팀 승리에 더 즐거워하는 모습을 담았다.
밴덴헐크는 지난해 한국무대에 데뷔한 뒤 동료 및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 한국어를 직접 배우는 등 다른 외국인 선수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기량뿐만 아니라 팀을 위하는 자세 또한 프로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기 후 직접 트위터에 글을 작성하며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말해 팬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이긴 경기는 함께 기뻐하고, 진 경기는 괴로운 심경을 토로하며 솔직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밴덴헐크는 최근 일본행 루머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국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밴덴헐크이기에 일본에서의 러브콜은 당연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일본프로야구의 대접이 더 좋은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가진 밴덴헐크라고 하더라도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팀을 위하는 자세, 그리고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자세만큼은 그가 한국을 떠나더라도 진한 여운을 남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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