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인사대천명. 사람의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말이다. 넥센 히어로즈의 에이스 앤디 밴헤켄(35)은 자신의 일을 다 하고 때를 기다렸으나 마지막 기회가 오지 않은 채 가을이 지나갔다.
넥센은 1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1-11로 패했다. 2승 2패로 맞이했던 5차전에서 뼈아픈 끝내기 패배를 당한 넥센은 6차전까지 내주며 2승 4패로 우승 꿈이 좌절됐다. 반면 삼성은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통합 4연패를 달성했다.
비록 충격적인 결말로 5차전 패배를 당했지만, 넥센은 6차전 승리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면 우승 희망이 충분히 있었다. 7차전에 에이스 밴헤켄이 선발 출격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삼성도 밴헤켄을 공략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았기에 시리즈를 7차전으로 끌고갈 수만 있다면 넥센이 유리하다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이번 시리즈를 돌아보면 4차전까지는 그야말로 ‘밴헤켄 시리즈’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차전 선발로 나와 상대 선발 릭 밴덴헐크에 밀리지 않는 6이닝 3피안타 2실점 호투를 해냈고, 3일 휴식 후 4차전에서도 공 80개만 가지고 7이닝 2피안타 1실점으로 삼성 타선을 꽁꽁 묶어 승리투수가 됐다. 대구와 목동에서 2승 2패를 거둔 넥센은 밴헤켄의 힘을 바탕으로 한국시리즈 승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보인 밴헤켄은 올해 월드시리즈 MVP인 좌완 매디슨 범가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떠올리게 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월드시리즈 1차전과 5차전에 선발 등판한 범가너는 최종전인 7차전에도 구원 등판해 팀의 우승을 책임졌다. 3경기에서 2승을 홀로 따낸 범가너의 평균자책점은 0.43(21이닝 1실점)으로 경이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밴헤켄의 결말은 범가너와 같지 않았다. 대구와 목동을 오가며 보인 투구는 한국판 범가너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지만, 범가너와 달리 7차전 등판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밴헤켄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으나, 밴헤켄이 마운드에 오를 수 있을 때까지 시리즈를 끌고 가지 못한 후회가 남을 뿐이었다.
넥센의 한국시리즈는 힘겨운 싸움이었다. 삼성이 최강 1~3선발(밴덴헐크-윤성환-장원삼)을 필두로 J.D. 마틴이 가세한 4선발을 가동할 때 넥센은 3선발을 선택했다. 밴헤켄은 물론 헨리 소사, 오재영도 짧은 휴식 후에 등판하는 강행군을 해야만 했다. 어려움이 예상된 시리즈에서 넥센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삼성의 힘에 눌리고 말았다.
결국 밴헤켄은 호투하고도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해서 빛나는 밴헤켄의 2014 시즌을 실패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이미 정규시즌 31경기에서 20승 6패, 평균자책점 3.51로 2007년 다니엘 리오스(두산 베어스) 이후 첫 20승과 함께 MVP 후보에도 올라 있는 밴헤켄이다.
밴헤켄의 소속팀 넥센 역시 마찬가지다. 첫 정상 도전은 삼성이라는 강력한 벽에 막혀 좌절됐지만, 수많은 가능성들을 확인한 2014 시즌이었다. 또한 더 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는 점에서 다가올 시즌에 대한 기대도 더욱 커질 것이다.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