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박한 농사꾼’ 하석주 감독, 씨만 뿌려 놓고 물러간다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4.11.13 06: 47

2년 동안 정성들여 가꾼 농작물이 알차게 영글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수확도 안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줬다. 세상에 이렇게 순박하고 셈을 못하는 농부가 또 있을까.
주인공은 올 시즌을 끝으로 전남 드래곤즈 지휘봉을 내려놓는 하석주(46) 감독이다. 전남은 12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하 감독이 자진사퇴를 선택했다고 발표했다. 후임 감독직은 노상래 코치가 물려받는다. 하석주 감독은 올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전남을 책임진 뒤 바통을 후배에게 물려준다. 이후 하 감독은 모교 아주대 감독으로 돌아갈 작정이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남은 올 시즌 돌풍을 일으킨 하 감독의 지도력을 인정해 2년 재계약을 제시했다. 수 억 원의 목돈이 바로 눈앞에 있다.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돼 있었다. 그런데 본인이 정중히 거절했다. ‘가족이 먼저’라는 이유에서였다. 하 감독은 몸이 좋지 않은 아내를 돌보고,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다. 또 노부모를 모시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누구도 하 감독을 더 이상 말리지 못했을 것이다.

2년 전 하석주 감독은 어려운 시기의 전남을 맡았다. 슈퍼스타는 아무도 없었다. 구단 사정이 여의치 않아 좋은 선수를 데려올 형편도 못됐다. 하 감독은 농부의 심정으로 유망주라는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물도 주고 거름도 치면 몇 년 뒤 큰 선수로 성장하리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늘 강등과 성적부담에 시달렸지만 하석주 감독은 흔들리지 않고 팀을 이끌었다. 현실적인 스트레스는 본인이 모두 떠안고 선수들에게는 기량향상에만 매진하도록 했다.
만년하위였던 전남은 드디어 올 시즌 돌풍을 일으켰다. 이종호, 안용우 등 어리기만 했던 선수들이 어느덧 K리그에서 주목할 만한 영건으로 성장했다. 마침 구단에서도 큰 맘 먹고 스테보 등 대형선수를 영입했다. 그 결과 전남은 올 시즌 한 때 2등까지 치솟으며 상위권 판도에 가장 큰 변수로 떠올랐다.
변수는 아시안게임 대표차출이었다. ‘대의’를 생각한 하석주 감독은 이종호, 김영욱, 안용우를 대표팀에 보냈다. 소속팀입장에서 막심한 손해를 입고 상위 스플릿 경쟁에서 밀린 결정적 계기가 됐다. 만약 전남이 상위 스플릿에 진출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석주 감독의 사퇴 결정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에 후련한 미소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못내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2년 전 하석주 감독이 뿌린 씨앗은 이제 결실을 맺어 돌아왔다. 전남은 K리그 어느 팀과 붙어도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는 탄탄한 선수구성을 갖추게 됐다. 하석주 감독을 보좌해 온 노상래 수석코치라면 하 감독이 못 다이룬 상위권 진출의 꿈에 다시 도전할 만하다. 자식처럼 키워서 가꾼 선수들이 결실을 맺도록 돕는 것. 떠나는 하석주 감독의 마지막 바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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