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V8 스토리]①안지만 부상과 선수단에 깔린 불안감
OSEN 손찬익 기자
발행 2014.11.13 09: 59

삼성 라이온즈가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통합 4연패를 차지했다. 위대한 도전 끝에 전설적인 기록으로 프로야구 역사에 남게 됐다.
선수들은 오는 16일까지 전원 휴식을 취하게 된다. 이후 팬들과 함께 하는 축승회를 비롯한 일정이 잡힐 예정이다. 몇몇 저연차 선수들은 현재 일본 오키나와에서 진행중인 마무리캠프에 합류할 수도 있다.
하루의 추억으로 끝나기엔 삼성 라이온즈의 통합 4연패 과정이 너무나 드라마틱했다. 여운이 크게 남는다. 그래서 삼성 라이온즈는 이번 한국시리즈 과정에서 선수단 내부에 있었던 잔잔한 스토리를 공개하고자 한다.

▲안지만의 부상, 선수단에 깔린 불안감
한국시리즈를 며칠 앞두고 불펜 주축투수 안지만이 스트레칭 도중에 등쪽에 담 증세를 호소했다. 1년 농사를 마무리하는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불펜 핵심투수가 부상을 입었으니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 모두가 말은 안 했지만, 선수단에 일말의 불안감이 깃든 게 사실이었다.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은 채로 3일 진행된 미디어데이에 안지만이 박한이와 함께 대표선수로 참석했다. 여기서도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당초 안지만은 상대 선수들에게 "내 공을 칠 수 있겠는가"라는 직설적인 질문을 하려 했다. 기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나름 공격적인 질문을 골랐다. 그런데 상대 선수들에게 먼저 질문 순서가 주어졌고, '초구 직구 승부 제안'이 나왔다. 안지만은 약간 당황했다. 투수 입장에서 절대 불리한 제안이기 때문이다.
이어 안지만의 질문 차례. 본래 준비한 질문을 하지 못하고 "내 공을 상대로 자신이 있는가, 직구와 변화구 중 어떤 구질에 자신있는가"라는 내용으로 어정쩡하게 완화됐다. 이어 상대가 또다시 "서로 강점이 있는 직구로 한판 붙자"고 답했다. 안지만은 미디어데이를 마친 뒤 동료 투수들에게 웃으며 "뭔가 말려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순간에도 안지만의 머리 속에선 부상에 대한 걱정이 교차됐을 것이다.
그리고 11월4일 시리즈 1차전. 삼성이 2대4로 패한 이날 경기에서 안지만은 적절한 타이밍에 투입되지 못했다. 경기 전까지도 담 증세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경기중 불펜에서 한차례 웜업을 했지만 그건 등판을 전제로 했다기 보다는 몸상태를 체크하는 수순이었다. 당시 안지만은 불펜피칭을 하는 과정에서 연신 양쪽 어깨를 돌리고 몸을 좌우로 굽히는 등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며 상태를 체크했다.
불펜 쪽에서 덕아웃에 전달된 사인은 '뻐근하지만 일단 큰 이상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리즈는 길다. 안지만은 경기에 나가지 않았다. 1차전서 패한 뒤 안지만이 투입되지 않은 것 때문에 논란이 있었지만 류중일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부상 사실을 알렸다. 어쩌면 이날 무리하게 기용하지 않은 류 감독의 선택이 이후 경기에서 안지만의 호투로 이어졌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박해민과 2만원짜리 스노보드 장갑
삼성은 5일 넥센과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7-1로 승리했지만 이 과정에서 외야수 박해민이 왼손 약지 인대 부상을 했다. 2루에서 부상한 뒤 교체를 사양했다. 홈까지 뛰어들어온 뒤에야 왼손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던 박해민의 모습에서 동료선수들 모두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한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하나. 박해민은 부상 직후 엄청난 통증 속에서도 스스로 손가락을 제 위치로 돌리려는 시도를 했다고 한다. 손가락에서 뭔가 소리가 났다고도 했다. 인대의 약 50%가 손상됐다.
삼성 트레이너들에 따르면 손가락 인대 부상이란 건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게맛살을 세워놓고 가운데 부분을 옆으로 조금씩 잡아당기면 완전히 갈라지진 않지만 튿어지면서 빈 공간이 생긴다. 이렇게 손상된 정도가 50%라는 것이다. 2차전 도중에 박해민의 검진 결과가 실시간으로 덕아웃에 전달됐다. 처음엔 "대주자 정도로 밖에 뛰지 못할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1승1패로 균형을 맞췄지만 또 한번 어두운 그림자가 삼성 덕아웃에 드리워졌다.
7일 3차전. 놀랍게도 박해민은 경기 전 훈련 때 티배팅과 프리배팅을 실시했다. "억울해서 이대로 못 있겠다"는 박해민의 의욕을 코치들도 말릴 수 없었다. 그 결과, 생각보다 통증이 크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진통제의 도움도 빌렸다. 박해민은 조심스럽게 캐치볼도 하면서 상태를 점검했다. 공을 받을 때 충격을 줄이기 위해 팔을 연신 가슴쪽으로 끌어당기며 부자연스럽게 캐치볼을 했다.
이를 지켜보던 김평호 1루코치가 분주해졌다. 구단 직원에게 "손가락 구분이 없는 장갑을 구해서 박해민에게 끼도록 하자"고 요청했다. 운영팀 직원이 바빠졌다. 목동구장 인근 백화점을 다 돌아도 구하지 못했던 장갑을 모 마트에서 발견했다. 약 2만원짜리 스노보드용 장갑.
박해민은 3차전 8회에 대주자로 투입될 때 이 장갑을 착용했다. 그리고 이승엽의 행운의 중전안타때 1루에서 홈까지 파고들어 천금 같은 동점을 만들었다. 이뿐만 아니다. 글러브를 끼기 위해 장갑을 벗은 박해민은 9회말 수비에선 상대의 중전안타성 타구를 다이빙캐치로 잡아내 승리를 지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박해민은 "잡을 수 있겠다 싶어서 몸을 날렸다. 손가락에 대한 걱정은 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승엽의 안타때 1루에서 홈까지 파고들 수 있었던 것도 성실한 주루플레이 덕분이었다. 박해민은 "아웃이 될 것 같아도 뛰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3루에 다가갈 때 김재걸 코치님이 팔을 너무 열심히 돌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 등 뒤에서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냥 끝까지 뛰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박해민의 부상 투혼에 대한 동료 베테랑 선수들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저 어린 연차의 아이가 인대가 50%가 나가는(손상되는) 부상을 하고도 저렇게 열심히 뛴다. 말이 안 되는 모습이다. 해민이를 봐서라도 이번 시리즈는 꼭 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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