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경신보다는 함께한다는 사실에 행복하고, 다 함께 전북 현대라는 것에 행복하다."
권순태(30)라는 이름은 전북에서 결코 가벼운 이름이 아니다. 전북의 골대를 지키는 주전 수문장으로 이번 시즌 31경기에 출전해 불과 17실점밖에 하지 않은 K리그 최고의 골키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름이 낯이 익지는 않을 것이다. 프로 데뷔 9년차이긴 하지만 A매치 기록이 전무하다. 권순태보다는 A대표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승규(울산 현대)와 정성룡(수원 삼성)의 이름이 익숙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명성이 실력의 전부는 아니다. 이번 시즌 권순태는 김승규와 정성룡 이상의 활약으로 K리그 클래식을 사로잡았다. 김승규는 이번 시즌 27경기에 출전해 26실점으로 경기당 평균 0.96실점을 했고, 정성룡은 33경기에 출전해 32실점으로 평균 0.97실점을 했다. 권순태의 31경기 17실점(평균 0.55실점)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권순태는 무실점 경기수서 17경기를 기록, 정성룡(13경기)과 김승규(10경기) 등을 제치고 무실점 경기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8경기서 17실점(평균 2.1실점)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그렇다면 권순태는 자신이 A대표팀에 뽑히지 않는 것이 서운하지 않을까?
지난 12일 전북 완주군에 위치한 전북현대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권순태는 "꿈이긴 하다"라고 답했다. 그는 "선수라면 당연히 대표팀에 대한 꿈을 안 가질 수가 없다. 대표팀 선수는 영광스러운 자리다.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매번 대표팀에 뽑히는 꿈을 꾼다. 하지만 이제는 희미해지는 꿈이다"며 "꿈은 꿈일 뿐이다. 상상하는 것보다는 현실 속의 전북에 대해 많은 생각을 더 하게 된다. 내가 안 뽑히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내가 안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모자르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부족함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더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순태의 발전 이유는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사실 상주 상무 시절 정말 힘들었다. 부상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굴러오는 공을 잡는 것도 힘들었다. 골키퍼인데도 공이 무서웠다"고 밝힌 권순태는 "잘하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안됐다. 그런 시절을 겪고 전북으로 복귀를 하니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지만 내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솔직히 경기 출전 여부와 내 경기력과 상관없이 불만이 있었고 힘도 들었다. 내가 과연 K리그 최고로 꼽히는 팀에서 계속 이렇게 있어야 하나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그런 권순태를 바꾼 것은 최강희 전북 감독이 건넨 한 마디였다. 권순태는 "동계훈련을 하는데 감독님께서 '희생해라'고 말하셨다. 더 많이 웃고, 동료들에게 더 많이 다가가라고 하셨다. 많은 이야기를 하셨지만 내 머릿속에는 '희생'과 '많이 웃어라'였다"며 "결국 내가 바뀌어야 했다. 이후 감독님이 말씀하신대로 했다. 전에는 경기서 뛰다가 벤치에 있으면 힘들다는 생각만 있었다. 벤치서 대기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알려고도 안했다. 하지만 그 때부터 그 선수들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됐다. 그 선수들과 그라운드 위의 동료들을 응원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희생이었던 것이다. 돋보이고 잘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내가 보이지 않더라도 동료들을 빛나게 하는 것이 맞다고 어느 순간부터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이제는 내가 벤치에서 대기하는 선수인 만큼 벤치에서 대기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자세히 알게 됐다. 또한 그 선수들, 그리고 어린 선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밥이라도 먹으면서 공유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었다"면서 "결과적으로 그런 일들이 모두 경기력 상승에 많은 도움이 됐다. 예전에는 실점을 하면 동료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책임을 돌렸다. 그런데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 내가 화가난 것처럼 그 동료도 화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를 내기보다는 '괜찮다'고 다독이게 됐다. 예전에는 (김)기희에게 경기 전에 '형 좀 도와줘'라고 하면 '네'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같이 같이'라고 답한다. 이제는 실점의 책임이 골키퍼만의 것이 아니라 팀 전체의 것이 됐다. 기희가 했던 '같이'라는 말이 매우 좋다. 기록 경신보다는 함께한다는 사실에 행복하고, 다 함께 전북이라는 것에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다 함께한 경기는 결국 전북의 세 번째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행복한 결실로 돌아왔다. 권순태는 "홀가분하면서도 걱정된다. 이러나 될 정도로 행복하고 좋다. 첫 정규리그 우승을 했던 2009년과는 비교도 안된다. 2009년과 비교를 하면 동료들과 더 융화됐고 같이 해서 더 행복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내가 한 것은 없다. 감독님과 코칭스태프, 동료들, 사무국 직원분들, 그리고 클럽하우스에서 일을 해주시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 모두가 일군 우승이다"면서 "남은 시즌 목표는 하나다. 전북에서 베스트 11 골키퍼를 배출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제는 꼭 내가 아니더라도 전북에서 베스트 11 골키퍼가 나오겠지만, 만약 내가 후보에 오른다면 베스트 11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내가 은퇴를 하더라도 '전북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을 하기는 했구나'하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작은 소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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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