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 바둑이니깐. 내 일이니깐. 내게 허락된 세상이니깐."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일개미 같은 직장인들을 먹먹하게 하고, 울게 만들더니, 그렇게 또 토닥였다. 언제나 그랬듯 공감에 바탕을 둔 '미생' 식의 위로였다.
지난 14일 방송된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미생'(극본 정윤정, 연출 김원석) 10회에서는 영업3팀에 충원된 박과장(김희원 분)이 진행하는 요르단 계약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오상식 과장(이성민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오과장은 영업3팀 팀원들에게 '협럭업체의 이익이 지나치게 높게 설정됐다'며, 구체적인 정황 포착에 나섰다.

요르단 거래 업체를 직접 방문한 김동식 대리(김대명 분)와 장그래(임시완 분)는 그곳에 이미 와있는 박과장과 맞딱뜨리고, "할 거면 절차대로 하라"며 그의 앞에 원인터내셔널 감사팀을 불러오기에 이른다. 결국 흐지부지될 뻔한 상황에서 장그래의 맹활약으로, 이번 일이 단순 백마진 정도가 아닌 박과장이 현지에 친인척을 동원한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거액의 공금횡령을 했다는 사실까지 모두 포착하는데 성공했다.
이 일은 원인터내셔널 철강팀 대리 시절 1억 2000만불의 중동 계약건을 성사시키며 한 때 회사의 영웅처럼 대우받던 박과장이 결국 돈은 회사가 벌고, 자신은 그저 월급쟁이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고 "재미없어"라고 내뱉으며, 자신을 위한 보상이라는 생각으로 벌어진 일이었기에 안타까움을 더했다.
회사 옥상에 서서 "남들이 우리더러 넥타이 부대니 일개미라 하고, 나 하나쯤은 어찌 살아도 사회든 회사든 아무렇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 일이 지금의 나야"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안하는 듯한 김대리에게, 장그래는 조치훈 9단이 말했던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라는 문구를 전하며 "바둑 한 판 이기고 지는 거, 그래봤자 세상에 아무 영향 없는 바둑이다"며 자못 덤덤한 태도를 취해보였다.
장그래는 마음 속으로 '그래도 바둑, 세상과 상관없이 그래도 내게 전부인 바둑'이라고 되뇌며 입사 후 자신의 주변에서 목도한 수많은 동료·선배 직장인들의 열심히인 모습을 차례로 떠올리며 '왜 이렇게 처절하게, 치열하게 바둑을 두십니까. 바둑일 뿐인데'라며 재차 되물었다.
결국 퇴근하며 올려다본 원인터 빌딩 외관에서, 그리고 달동네인 자신의 집을 오르는 길목에서 서울의 야경을 보며 '그래도 바둑이니깐. 내 바둑이니깐. 내 일이니깐. 내게 허락된 세상이니깐'이라는 말로써 신입사원으로서 직장인들의 처절하고 치열한 모습을 조금씩 이해한다.
'미생'은 과거 프로 바둑기사를 꿈꿨다가 좌절하고 대기업의 신입사원이 된 장그래라는 인물을 통해 커다란 조직의 부품 조각처럼 허무함을 느끼면서도 하루하루 처절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 직장인들의 묵은 고민에 공감하고, 그곳에 따스한 위로와 응원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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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미생'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