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하녀 쯤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야?"
인기리에 방송 중인 tvN '미생'을 보고 있으면 가장 속이 터지는 부분이 있다. 주인공 장그래(임시완)도, 오상식과장(이성민)도 아닌 안영이(강소라)일 것이다. 적어도 장그래와 오과장은 '영업 3팀'이라는 끈끈한 조직에 속해 있으니까.
배우 강소라가 연기하는 안영이는 빈틈 없는 뛰어난 업무 능력에 내적 단단함을 지닌 인물. 어딘가 비밀이 감춰져 있긴 하지만 그가 뛰어난 인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남녀차별 속 온갖 구박과 핍박을 당하고 있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동정을 넘어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를 표하고 있다.

안영이를 보면 '왜 저렇게 당하고만 있어야 하지?'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마련. 직장 리얼 드라마로 호평받고 있는 '미생'의 안영이에 대한 반응을 취합해보면, 대체적으로 안영이가 '뻣뻣한 여자'의 생존기로 리얼한 터치라기 보다는 개선돼야 할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례로 보고 있는 시선이 많다.
임신한 몸으로 3일 야근 후 쓰러지는 여직원을 두고 "대체 애를 몇이나 낳는 거야", "진짜 여자들이 문제야", "기껏 교육시켜 놓으면 결혼에, 임신에 핑계도 많아. 그것도 아니면 눈물바람으로 해결하려고 그러고 말이야"라고 말하는 남자 직원들의 모습은 웬만한 공포영화 못지 않다.
안영이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연찮게 앞을 가로막았다는 이유로 남자 선배한테 "재수없다"란 말을 듣고, 도시락, 커피, 심지어 담배 심부름까지 하고 생수통도 갈아 끼우려고 한다. 수직적인 권위주의 세계에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한 마디로 '잘난 여자' 안영이가 살아남는 방법은 '박박' 기는 것이다. 하지만 비극적인 것은 몸을 낮추면 낮출수록 상대의 횡포가 더 심해진다는 것에 있다.
하대리의 허드렛일을 자처한 안영이는 하대리도 어이없어 할 만큼 팀 내 남자직원들의 잡무를 담당했다. 안영이가 사무실 내 휴지통을 비우자 후배에게 "한다고 하게 냅두냐"라며 성을 냈던 하대리는 갈수록 남자 직원들이 안영이에게 시키는 심부름의 강도가 높아지자 후배에게 "지금 뭐하는 거야?"라고 질책했다. 이를 보던 자원팀남자들은 "도와주려고 했다"라며 머쓱해했다. 덧붙인 자원팀 과장의 말은 안영이의 팀 내 현재의 모습을 잘 드러냈다. "쟤 혹시 안영이에게 딴 맘 있는 거 아냐?..지 개인 하녀쯤으로 생각하는 거 아냐?"
하대리에게도 인간적인 모습이 있구나, 라고 느낀 찰나 트럭 파업에 지시받은 일을 억척스럽게 완수하려는 안영이의 모습을 뒤늦게 안 그는 휴대폰을 붙들고 "당장 회사로 와라"고 소리쳤다. 일면 안영이의 근성과 노고를 인정해주는 듯 하지만 그 표현은 상욕으로 가득차 있었다. 때로는 결과보다 절차가 중요하듯이, 감정보다 표현이 중요할 때도 있다.
자원팀은 여성 혐오증, 혹은 여자와 잘 어울리는 법을 알지 못하는 남자들이 똘똘 뭉쳐 있다. 여기에 엘리트 집단으로 꼽히는 부서로 남자들은 자부심이 강하다. 이런 자원팀에서 실제로는 하대리(전석호)처럼 직설적으로 온갖 불쾌한 감정을 표현하고 상욕을 서슴없이 하는 상사는 많지 않지만, 어쨌거나 회사가 안영이와 하대리를 놓고 봤을 때 하대리의 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여자 후배를 개인 하녀쯤'으로 여기는 남자 상사는 실제적으로는 드물지만, 비슷한 분위기가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경우가 아예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어쨌거나 드라마 속 안영이의 모습은 '현실적이다', '과장됐다', '저런 경우는 못 봤다'라는 의견이 팽팽히 공존 중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여직원들이 직장 내 성차별을 넘어 연차가 쌓이게 되면 일적인 고민보다도 가정과 육아, 그리고 일을 놓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물리적이고 집단적인 괴롭힘이 아닌, 남직원들과는 또 다른 내적 고민이 크다는 것이다.
한편 강소라는 연기를 위해 만났던 실제 자원팀 직원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다른 부서보다 자원팀 프로젝트가 굉장히 길다고 한다. 5~10년 짜리 프로젝트도 있어서 사원이 중간에 나가거나 바뀌면 새로 들어오는 분들에게 기존에 있던 분이 처음부터 다 알려줘야 하고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하더라. 다른 부서의 몇 개월 자리 프로젝트들과는 다르더고 하시더라. 그래서 여사원에 대한 것(편견)이 더 커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안영이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잘못도 없고, 능력도 자신도 있는데 억울했을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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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캡처